여론마당(오피니언)

비틀어 짜며 (2) /문경자

문경자
논설위원
이런 남자와 한 평생을 살아 갈 날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돌아 누운 등쪽을 보고 말했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발로 차버렸다. 방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밤을 꼴딱 세워버렸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였다. 가슴이 막혀왔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않고 가버렸다. 눈이 따갑다. 문짝을 고치는 아저씨는 “간 밤에 부부싸움을 했나 봐요. 이렇게 부숴진 문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지요”하며 고쳐주고 갔다.
옆집에 사는 아줌마에게 그 옷을 보여주었다. 밝은 곳으로 나갔다. 립스틱과 인주를 동시에 칠해 보았다. 같은 색으로 분별이 어려웠다. 친정엄마가 안 계시니 속이 터져도 말을 할 데가 없었다.
장위동에서 도봉산 가는 버스를 탔다. 날씨는 덥지! 등에 업혀 있는 아들이 축 늘어져 더 힘이 들었다. 아줌마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고 하였다. 어느 정류장에 내렸다. 아줌마는 너무 지쳐 징징거리며 보채는 아들에게 쭈쭈바를 사주었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햇빛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용광로 같았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아이는 엉덩이 아래로 자꾸만 내려갔다. 다시 고쳐 업고 뒤를 따랐다. 언덕배기를 올라 가는데 숨이 헐떡였다. 등에 업힌 아이는 자꾸만 칭얼거렸다.
빨간 깃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키가 작고 머리는 바글바글 지져서 일년에 한 번만 미장원에 가는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눈은 감았는지 눈동자가 참외 씨 같아 보였다. 그러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줌마에게 아는 척하였다.
내 딱한 사정 얘기를 듣고 있던 점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고 흰쌀을 한 움큼 쥐더니 상위에다 뿌렸다. 눈을 감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왈 “남자가 일을 하다 보면 그냥 다방에서 차 한잔 정도 하는 그런 사이지, 여자를 사귀거나 좋아할 그런 위인은 못 되니 안심하고 가라”는 말만 했다. 나의 속마음은 ‘죽고 못사는 여자가 하나 생겼다!’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헛고생만 하였다.
점쟁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였더니 그 옷을 엄지발가락에 걸어서 잡아 당겨 쭉 찢어 방바닥에 던졌다. “아니, 이상하네. 가슴 한 구석이 찔리는가 보다”라며 나는 내 팽개쳐진 옷을 주워 돌돌 말아 장롱구석에 숨겨놓았다.
언젠가 장롱을 정리하다 꺼내보았다. 그 옷도 이제는 낡아져서 립스틱? 자국도 분간하기가 어려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말이 없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바위에 두부치기였다. 남편이 하는 말에 의하면 여자랑 싸움을 해보아야 쓸 말도 없거니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고 하였다. 그래야 집안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런 표적을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부부싸움도 해야
만 정도 들며 속마음도 알아 볼 수 있다지만 그 성격이 어디 쉽게 바꾸어 질 리가 있겠나 싶어 어지간한 일은 여자인 내가 참아야지. 이렇게 만났으니 믿고 살자. 입술에 립스틱을 바를 때면 가끔 생각이 난다.
립스틱? 아니면 인주(印朱)가 맞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