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

세종 대왕(世宗 大王)과 야은 길재(冶隱 吉再)-주영국

주영국
논설위원

세종(1397~1450)은 조선의 제4대 왕으로 태종의 셋째 아들로서 32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항상 백성의 어려움을 보살피던 세종은 소통과 의사 전달에 아무런 불편이 없이 쉽게 배워, 쉽게 쓸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인 한글을 만들어 온 누리에 펼친 왕으로 정치, 문화, 사회 각 방면에 걸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명하고 위대한 왕이다.
그리고 길재(1353~1419)는 고려의 충신으로 뒷날 이씨의 천하가 되자 친분이 남달리 두터우며 원래 같은 마을에 살았으며 성균관에서 함께 강론하고 학문연구에도 같이 열심이던 이방원의 문하주서에 임명되었으나 노모에 대한 봉양을 이유로 물러났다. 고향 선산에 돌아와 후진양성에만 힘썼다. 노모에 대한 효도가 지극했으며 출세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많았으며 일세의 사표가 되었다. 만년에 금오산에서 여생을 보내다 세종 원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의 고관별직을 두루 거친 그로서 창왕의 문사주서까지 지내면서 여조에 충성을 다한 그의 심상에서 한 임금에 대한 높은 충절을 읽을 수 있어 충성심이 진정으로 거룩하고 훌륭함이 현대인의 삶에 많은 감동을 준다. 역사 속에 이 두 인물은 우리가 마음으로 크게 공경할 인물인 성군이며 충신이다. 여기 감명깊게 느껴지는 세종의 아름다운 이런 이야기가 떠올라 여기에 옮겨본다.
고려 왕조에는 어진 신하요, 이씨 왕조에는 적인 길재의 죽음에 대하여 세종은 호조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길재 선생 댁에 쌀 열다섯 섬과 백지 일백 권을 보내서 장례식에 쓰도록 하여라.” 자기 아버지(태종:이방원)와 할아버지(태조:이성계)를 반역자로 보고 고려 왕조에 충성을 지킨 길재 선생에게 이렇듯 쌀과 백지를 내린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길재 선생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학자로서의 업적을 높이 칭찬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길재 선생께서는 효도, 충성, 신의, 예의, 염치 등을 후학들에게 가르쳤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자 주자님이 가르치신 대로 장사를 치르시었다. 그리고 항상 단정히 앉으시어 말없이 밤이 깊도록 공부를 하였으니 신하로서의 지켜야 할 절개의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구나” 하였다.
세종은 이렇듯 자기 왕실에 등을 돌린 분에게까지 옳음을 옳다하며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마음씨가 건국 초에 어지러워지기 쉬운 나라를 별 말썽없이 다스리게 한 힘이었던 것이다.
오직 백성만을 위해 살았던 세종의 이같은 높은 인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