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의 충격 -권해조 칼럼
권해조
논설위원
지난 2월 13일 오전 북한 노동당 위원장인 김정은의 이복형(異腹兄)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었다. 22일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번 사건의 배후는 북한이며, 사건에 가담한 두 여성과 북한으로 달아난 공작원과 대사관 소속 외교관, 고려항공 직원까지 연루된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발표하고, 24일 부검결과 사용한 독극물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독성인 VX 신경작용제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도 27일 ‘김정남 암살은 북한 보위성과 외무성이 가담한 국가테러’라고 밝혔다.
북한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가진 반체제 세력들이 김정남을 중심으로 뭔가를 도모하려는 가능성을 사전 제거하고, 특히 김정남이 최근 한국 등 제3국으로 망명설이 북한 수뇌부에 알려지면서 계획된 암살로 보고 있다. 그동안 백두혈통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김정은의 출생비밀, 김정남의 적자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로 김정은의 잠정적 경쟁자를 사전 제거하기 위한 북한 권력기관의 충성경쟁으로 이루어진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범행 장소인 말레이시아는 대남공작을 총괄하는 북한의 정찰국 산하 사이버 부대가 있고, 상호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여 북한공작원이 자유롭게 출입국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강철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17일 병원 앞과 20일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은 ‘한국과 결탁한 음모’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망자는 북한 외교관 김철이며 사인은 심장마비자연사로 시신의 북한 인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집 라작 말 총리는 ‘경찰과 의사들은 아주 객관적이며 북한을 나쁘게 할 이유가 없다’며 이해를 요구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강철 대사를 초치(招致)하여 강력하게 불만을 전달하고 평양주재 말레이시아 대사를 소환하였다.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19일 북한 측의 시신인도 요구를 거절하고 시신인도 우선권이 가족과 친지에 있다고 밝혔으며,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22)이 시신 인수를 위해 조만간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사건을 ‘한국정부의 대본에 따른 음모책동’이라며 남측에 책임을 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20일 공개된 현장영상을 보면 도안티흐응(29.베트남), 시티 아이샤(25. 인도네시아) 여성 2명에 의해 청부 살해되었고, 배후에는 체포된 리정철(47)과 사건직후 북한으로 달아난 총책인 리재남(57)등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다. 그리고 암살에 가담된 두 여성의 숙달된 범행 동작과 범행 후 김정남을 살핀 점을 보아 작전 실패 시 차선책을 대비하는 등 치밀한 사전계획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1971년 경남 창녕출신 영화배우 성혜림 사이에 출생한 김정일의 장남이다. 1980년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김정일과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이 태어나면서 후계자에서 밀려났으며, 그동안 마카오,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 동남아 국가를 오가며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는 2001년 ‘팡 시옹’이란 차명여권으로 일본에 불법 입국하다가 적발 억류되면서 후계구도에서 완전 탈락되었으며 이번에도 김철이란 가짜여권을 사용하였다.
그는 2004년 오스트리아에서 첫 암살위협에 이어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피살위기, 2011년 마카오에서 총격전에서 살아남는 등 5차례 암살을 모면하였다. 특히 2009년 김정은 집권 후 신변안전에 크게 위협을 느껴왔으며, 2013년 후견인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남한에 망명 요청설까지 나왔다. 그는 김일성-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북한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탈북대표들이 제안한 망명정부 수반도 거절하였다. 그리고 아들 김한솔도 ‘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삼촌인 김정은을 독재자(dictator)’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사건은 김정은 친족들과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고위직 반체제 인사들에게는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7년 2월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36)의 피살사건, 2013년 장성택 처형, 이영호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에 이어 최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체코대사 김평일과 김한솔을 포함한 친족들과 황장엽 이후 태영호 등 고위직 탈북자들 신변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리고 이번사건은 김정은의 ‘인권유린과 공포정치’의 잔악성과 특히 전쟁에서 사용하는 고독성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하여 국제사회에 큰 분노와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CNN은 ‘정말 미친 짓이다. 김정은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23일 김정은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다며, 북한을 아주 강하게 다룰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정부도 22일부터 금융, 무역, 운송, 교육 등 4개 분야 대북제재를 추가 단행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27일 제네바에서 열린 34차 유엔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인권침해자들에 대한 불처벌의 관행을 종식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앞으로 북한-말레이시아 국교단절, 미국 의회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김정은을 유엔인권위원회에 회부하여 국제형사재판소(ICC)법정에도 세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권한대항도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은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반인륜적 범죄행위이자 테러행위라고 비판하고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을 모색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앞으로 북한이 진실을 덮기 위해 어떤 불장난을 저지를지 모른다. 최근 미국의 선제 타격론, 북 정권 붕괴론에 이어 커티스 한미연합군 사령관도 3월에 실시하는 한미연합훈련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 국민과 정치권도 경각심을 갖고, 특히 정부와 군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여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