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향토사연구회 정유년 신년 창의사참배 (5)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이 사용했던 칼 ‘눈길’
이와 같이 창의사는 합천 의병부대의 성립과정과 전투업적, 그리고 임진왜란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잘 전시해놓았다. 물론 유물관 안에는 아군병력 배치현황표, 적군병력 배치현황표, 경상도 의병장과 의병진 규모 등도 있고, 합천 의병의 안언역 전투, 초계 마진 전투, 무계 전투, 현풍 영산 전투, 진주성 구원 전투, 성주성 전투 등을 해설한 게시물이 잘 전시되어 있다.
의사(義士)들이 남긴 유물과 유품들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입었던 갑옷(장군복)과 썼던 투구, 당상관의 관복(당시 공을 세운 인물이 입었던 복식), 1593년 6월 진주성 싸움 때 순절한 윤탁 의병장의 상소문과 과거시험 답지, 정창서가 사용했던 벼루, 온양군수 재직시 선정을 베풀 때, 당시 관찰사 이원(李原)이 조정에 장계를 올려 왕으로부터 관복과 함께 내려온 조응인에게 보낸 왕의 유서(諭書), 임진왜란 때 의병장 유세온 장군이 직접 사용했던 칼 등 경상우도 선비들의 기개(氣槪)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내암군의 중위장이 되어 무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마진 전투에서 전사한 손인갑 장군의 칼도 보관돼 있다. 이 군도는 당시 손인갑 장군이 「왜병을 섬멸하던 칼」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여기에는 정인홍의 녹권과 영의정에 임명한 광해군의 교지(敎旨), 그리고 하혼과 정진철 장군의 교지도 있다. 하혼의 교지는 찰방으로 있을 때 세운 임란 공적을 인정받아 좌승지로 증직 임명되면서 받은 임명장이다. 정진철은 1568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출생한 인물로, 임란 중 많은 공적을 세워 직장(直長)이 되고, 1606년 권무별시에 급제하여 제물량 수군만호를 거쳐 명천부사에 이르렀다. 그 외 윤선(尹銑), 윤탁(尹鐸), 손인갑(孫仁甲)의 문집과 조응인(曺應仁)의 자필 책자, 정인준(鄭仁濬:정인홍의 6촌 동생)의 1579년 진사 급제 교지도 있다.정언충(鄭彦忠)의 묘지석(墓誌石)은 아주 색다른 유물이다. 이 돌들은 정언충의 묘소에서 발견된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본인의 행적 및 합천의병군의 낙동강 방어기록이 담겨 있다.
창의사의 건물 배치
창의사가 임진왜란의 의병들을 기리는 공간인 만큼, 그 공신들의 행적과 기록들을 알기 쉽게 전시하여 이를 후대에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위기를 목숨 바쳐 극복한 충렬들을 모신 창의사를 찾아 그 고귀한 정신과 기백(氣魄)을 배우고 오늘의 현실에 재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사는 합천군 대병면 성리 539-2번지에 소재해 있다. 사당에 참배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도착해서 차량으로 사당까지 바로 오르지 말고 계단을 밟고 도보로 올라가야 한다. 도보로 올라 첫 번째 만날 수 있는 시설은 하늘을 찌를 듯 웅대하게 높이 솟아 있는 「합천임란창의기념탑」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탑이 상징하는 충렬(忠烈)들의 기백(氣魄)을 현장에서 느끼고 우러러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념탑 하단 세 모서리에는 죽창과 괭이, 삽, 쇠스랑 등을 든 농민의병들의 투쟁상이 조각되어 있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기념탑 위 두 번째 계단을 오르면 외삼문인 숭인문(崇仁門)이 나타나고 그 좌우에 사적비와 사주문들이 있다.
세 번째 계단을 오르면 유물관과 교육공간으로 쓰이는 강당 건물(敬義堂)이 나온다. 유물관(唯物觀)에는 창의사 건물 전체의 핵심 부분으로 임란 당시의 유물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네 번째 계단을 오르면 의병장 정인홍 장군과 의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倡義祠)가 나타난다.
합천창의사에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닥쳐온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계기로 삼는 슬기와 강인성을 가진 민족이다.
이제 우리는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라는 인류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나라일은 안중에도 없이 무모하게 계속되는 정치권의 반대 투쟁, 보수와 진보세력의 대립과 갈등, 최순실 게이트 파장의 혼미한 정국의 늪에서 우리는 실망하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 역사에도 시련은 있었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挑戰)했던 민족은 비전(vision)의 역사를 새로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새로운 비전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합천인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임란 때 목숨을 걸고 국토와 민족을 선봉에서 수호한 선열들의 충혼(忠魂)이 잠들어 있는 이곳 합천의 창의사를 찾아와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임란 극복사를 배우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기를 바라면서 (사)합천향토사연구회 정유년 새해 창의사 방문기를 마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