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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에는 국사전이, 해인사에는 국사단이 있다.-이병생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를 삼보사찰이라고 하는데 특히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하였기 때문에 승보사찰이라고도 한다.
송광사에 제1세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을 비롯해서 마지막 제16세 고봉 법장스님(1350~1428)을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사찰로 불려지고 있는데, 16국사 가운데 열다섯 분이 고려시대에 활동했다.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의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이런 스님들의 역할이 아주 컸다. 그리고 송광사의 고려시대 역사 역시 이 열다섯 분의 국사를 배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각각의 행적이 자세한 것도 있고, 기록이 부족해서 아주 일부분만 알려진 것도 있다. 그리고 열여섯 분 가운데 맨 마지막의 고봉 법장스님은 고려시대에 태어났지만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주요한 활동을 했으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국사는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숭유억불정책. 곧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른다는 것이 국가 종교정책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내리는 국사라는 칭호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장스님은 국사라는 칭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의 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므로 주저 없이 국사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송광사에는 오래전부터 국사전이 있어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해 왔는데 근래에 열세분의 영정을 도난당하고 세분의 영정은 박물관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그래서 국사전에는 16국사의 영정을 모본해 봉안하고 있으며 1년에 7일간만 국사전을 관람 할 수 있다.
해인사에는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있다. 그 안 오른편에 조그마한 법당 국사단이 나온다. 여기에는 가야산신인 정견모주 신을 모신 사당이다. 2016년 1월, 조선일보 편집부 기자를 지낸 박정원 부장이 찾아와 함께 국사단의 정견모주 신을 조사한 바 있어 2016년 3월호 「山」이란 잡지에 아주 상세히 실려 있어 다 함께 알고자 기고하는 바이다.
가야산은 고대 가야국의 진산이다. 정교(政敎)가 분리되지 않은 고대국가는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국가의 통치자를 겸했다. 따라서 국가를 건국한 왕은 신격화된 건국신화가 반드시 뒤따랐다. 하늘로부터 받은 왕권을 더욱 신성시하고 통치권을 공고히 다지는 차원에서라도 신화적으로 만들었다. 왕은 낳은 부모부터 왕까지 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각색됐다.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신화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고대 국가들이 그렇듯이 가야도 당연히 건국신화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가야에는 두 가지 건국신화가 존재한다.
〈고려사〉지리지 경상도 김해도호부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후한 광무제 건무 18년 3월에 가락의 9간(干)인 아도, 여도, 피도, 오도, 유수, 유천, 신천, 오천, 신귀가 물가에 모여 술을 마시다가 구지봉을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가서보니 자색(紫色) 새끼줄에 매인 금합(金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합을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여섯 개의 금빛 알이 있으므로 아도의 집에 가져다 두었다. 이튿날 아홉 사람이 모여서 또 열어보니 알 여섯개가 껍질이 쪼개져 여섯 동자가 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쯤 되었고, 용모가 매우 거룩해 모두 절하며 축하했다. 동자는 나날이 자라나서 10여일이 지나자 신장이 9자나 되었다. 무리들이 드디어 한 사람을 받들어서 임금으로 삼으니, 이가 곧 수로왕(首露王)이다. 금합에서 났다고 하여 성을 김씨라 하고 나라 이름을 가야라 하니, 신라 유리왕(儒理王) 18년(서기 41년) 박혁거세의 손자의 일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헤어져 가서 다섯 가야 임금이 되니, 동쪽은 황산강(지금의 낙동강)을, 서남쪽은 바다를, 서북쪽은 지리산(智異山:당시 표기는 地理山)을, 동북쪽은 가야산을 경계로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에도 유사하게 소개한다. 김해를 본거지로 둔 금관가야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내용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고령현 건치연혁편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고령현은 본래 대가야국이다. 시조 이진아시왕(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함)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세 520년이다.
최치원의 〈석이정전〉에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라 했다. 그러나 가락국 고기(古記)의 육란(六卵)의 전설과 더불어 모두 허황한 것으로 믿을 수 없다. 또 〈석이정전〉에는 “대가야국의 월광태자는 정견의 10세손이요,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이며, 신랑의 영이찬 비지배의 딸에게 청혼하여 태자를 낳았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대손이라 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참고할 것이 못 된다. 국사단 앞 안내문에는 “국사단은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서 국사대신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가리킨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깨달음의 어머니)는 하늘의 신 이비가(지가 생략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했다고 한다. 국사대신은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면서 신비스런 현풍(玄風)을 떨쳐 해인사에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린다.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셨기 때문에 도량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고 돼 있다. 가야산 상아 덤에는 산신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를 만나 몸을 합하는 돌 모양이 상징적으로 아직까지 전한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산신일 뿐만 아니라 해인사 보호 신으로서도 자리매김한다. 해인사의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국사단에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만물상 끝나는 지점 하늘과 통하기 가장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말이고, 덤은 바위를 가리킨다. 여신이 사는 바위란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뾰족하면서 화살촉같이 생긴 바위가 땅에 있는 바위를 쪼갠 듯 양쪽으로 벌어진 그 사이에 절묘하게 꽂혀 있다. 인간의 손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이곳이 바로 가야산신 경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전설이 서린 신비스런 장소다. 전설에 따르면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마련하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천신 이비가지는 어느 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 덤에 내려왔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최치원의 〈석순응전〉과 이를 인용한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하지만 〈석순응전〉과 〈석이정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나온 〈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될 정도면 당시까지는 존재했다는 얘기다. 그 이후 전란 등으로 소실됐거나, 분실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로 순응과 이정은 802년 해인사를 창건한 승려들이다. 최치원이 이 승려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기 형태로 쓴 책이 〈석순응전〉과 〈석이정전〉이다. 여기에 가야산 산신과 해인사 창건에 관련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