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제일봉과 매화산은 완전히 다른 산이다. -이병생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인터넷에 보면 매화산 중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남산제일봉”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남산제일봉을 매화산으로 알고 있고, 등산객들도 거의 모두 같은 산으로 알고 있기에 이를 바로 알 수 있도록 기고하고자 한다.
필자는 남산제일봉아래 청량사가 있고 건너편에 매화산이 있는데, 바로 그 아래 청량동이라는 부락에서 출생하여 70년이 넘도록 살아왔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매화산과 청량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남산제일봉(해발 1010ⅿ)은 해인사에서 서남쪽에 위치해 있고, 그 중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해서 부쳐진 이름이며 우뚝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나 바위들이 천개의 동자승이 경전을 펼쳐놓고 앉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천불산이라고도 한다.
최치원선생은 月留峰(월유봉)이라고도 하였다. 달이 남산제일봉을 넘어가려다가 그 봉우리가 너무 아름다워 넘어가기가 아쉬워 산봉우리 위에서 달이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류동계곡을 경계하여 해인사와 마주보고 있으며, 정상에 올라서면 북으로 가야산이, 남으로는 맑은 날에는 대구시가 보인다고 하며, 서쪽으로는 죽전저수지가 보이며 거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광경은 정말 어느 곳에도 비유할 바가 아니다.
남산제일봉 화강암에서 비치는 화기가 해인사 대적광전에 비추어 화재를 자주 일으킨다고 하여 5월 5일 단오일에는 해인사 대중스님들이 소금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해서 두 섬을 정상에 묻었다고 하나 근래에 와서는 정상에 동서남북과 중앙 5곳에 소금단지를 묻어 놓고 그 곳에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한다. 해인사의 대적광전이 子坐午行(자좌오행)으로 위치하면 도인은 많이 나되, 화재가 빈번하고 丑坐未行(축좌미행)으로 위치하면 도인은 적게 나되 화재가 빈번치 않다는 풍수지리학설에 따라 처음에는 해인사 대적광전을 子坐午行으로 잡았다가 1817년 대형화재 이후 신축하면서 丑坐未行으로 위치하였다. 그리고 남산제일봉에 소금을 묻고 난 이후부터는 빈번하던 해인사 화재가 오늘날까지 한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5월 5일 단오일에 소금을 묻는 것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매화산(해발 954.1ⅿ)은 남산제일봉 건너편에 위치하며 산의 형상이 마치 매화나무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혀 아름다움을 나타내듯이 아름다운 산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혹자들은 화재 때문에 소금을 묻는다고 하여 묻을매(埋), 불화(火)로 해서 埋火山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틀린 해석이다. 한자로 매화매(梅)와 꽃화(花)로 하여 梅花山으로 쓰는 것이 맞다.
남산제일봉을 매화산으로 불리게 된 원인은 1983년도 가야산국립공원에서 등산로를 개설한 후, 등산로 이름을 매화산 등산로로 명명하면서부터 혼돈을 가져와 사람들은 남산제일봉을 매화산으로 알고 또는 매화산 안에 제일 높은 봉우리가 남산제일봉으로 알고 있기에 바로 알리고자 한다. 이와 함께 청량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하자.
최치원선생은 청량사에 대하여 “在月留峰下崔致遠常遊于此(채월유봉하최치원상유우차)”라 한 기록이 있다. 청량사의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 의하면 사찰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하며, 순조 11년(1811년) 희은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淸凉寺(청량사)였지만 지금은 해인사 말사로 되어 있어 淸凉庵(청량암)으로 되어 있다. 신라 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선생이 해인사보다 먼저 이곳에 들렸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며 많이 왕래하였다고 한다. 폐사직전인 절을 대처승들이 사용하다가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처승들이 밀려나가고 1955년경 약수암 최장일스님을 비롯한 비구니스님들이 들어와 요사채 앞 축대를 쌓고 거처하다가 1960년도에 최경암스님이 법당과 3층 석탑을 보수하고 요사채를 신축하여 이때부터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백련암 성철스님의 상좌인 원행스님에 이어 원타스님이 5년에 걸쳐 대웅전과 요사채, 설영루 등 많은 건물을 신축하여 현재는 큰 가람을 이루고 있다.
본 청량사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절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이 주변에 많은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들어 절이 모두 폐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지만, 남산제일봉 바로 밑에도 지금도 절터가 남아있고, 올라가는 등산로 중간쯤에는 토굴이 있었던 터와 샘이 남아 있어 지금도 그 지명을 토굴재라고 부르며, 절터평년이라든지 이러한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편 청량사에는 보물이 3점 있는데 보물 제253호인 청량사 석등과 보물 제265호인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6호인 3층 석탑이 있다.
매화산 등산로가 개설된 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개설직후에는 봄이나 가을단풍철에는 공휴일이나 되는 날이면 차량이 300~400여대나 밀려 주차하므로 통행에 불편을 줄 뿐 아니라 하루에 10,000여명 이상 등산객으로 붐벼 올라가는데 2시간이면 되는 시간이 3~4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인사 소리길이 개설된 후 등산객의 수가 많이 줄어든 셈이다. 몇 년 전만해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산이 많이 훼손되었다하여 3년간 국립공원에서 휴면기간을 설정하여 출입을 통제하기도 하였다. 철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기암괴석들 즉 민태바위를 비롯하여 선장바위, 열쇠바위, 촛대바위, 부처바위, 수녀상바위 등은 정말 장관을 이룬다. 능선을 오를 때마다 “야아!”하고 감탄사를 자아낸다. 제2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운다. 하루의 일정을 즐기는 데는 정말 좋은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남산제일봉을 찾아 즐거운 등산을 만끽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