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

전두환 前대통령 회고록을 읽고 칼럼_서정한 편집국장

서정한 편집국장

서정한 편집국장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1, 2, 3권이 출간됐다.[전두환회고록_2017.4.5.초판2쇄발행/자작나무숲]
이와 함께 출간된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까지 총4권의 책을 최근 구입하였다. 분량도 한 권당 600여 페이지가 되는 두꺼운 책장을 넘기며 여러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全대통령이 퇴임 후 백담사로 갔던 일, 김영삼 정권때 골목성명 발표 후 고향 율곡에 내려왔다가 하룻밤도 다 새기 전에 체포되어 압송되었던 일, 그런 와중에 안양교도소까지 합천신문을 편지봉투에 접어 넣어 매주 우송했었다.(신문우편발송은 1995년 창간 후부터 한번도 빠짐이 없었다.) 그리고 특별할 일이 없을 때는 매년 고향 선산을 방문해 고향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해마다 신년휘호를 합천신문에 1면에 싣거나, 사면복권을 위한 군민서명운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합천과 관련한 이런 소소한 일들이 회고록에 나와있지는 않다. 하지만, 합천신문을 창간했던 故박환태 초대사장과 출향향우들과 군민들은 합천의 최고 인물인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여왔었다.
지금 대통령 탄핵과 북핵 등으로 인해 혼란스런 가운데 회고록이 발간된 것은, 현대사 중요한 당사자로서의 책임있는 진술을 하고자 하는 全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때문이다. 이 시점을 맞췄다기 보다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일이 마무리되어 출간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글 서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국민은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과 역사의 요구에 따라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알고 있는 대로 서술할 것이다.”
하지만 벌써 여러 언론매체에 나온 회고록 평가에서 볼 수 있듯이 평가는 제각각이다. (물론 주로 회고록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많다.) 이런 반응도 예상했다는 듯이 이런 글이 있다.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고, 나는 당사자의 한 사람이었던 만큼 나의 진술이 냉정한 관찰자의 증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즉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은 당사자로서 불가능하며, 주체적인 관점에서 진술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결국 全대통령의 말대로 “해석과 평가는 국민 각자의, 그리고 역사의 몫”이라고 해야 겠다.
앞으로 3권의 회고록 중 주요내용들을 독자들과 함께 짚어가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 그전에 합천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全대통령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이야기는 지금은 고인이 된 유상호 前국회의원이 민정당 공천을 받은 일이다. 한번은 유前의원과 한 숙소를 쓸 때, “대통령께서 왜 나를 고향 합천에 국회의원 공천을 하셨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국회의원에 공천될 만한 인물로는 전경환 회장이 유력했었다. 당시 반공연맹은 민정당보다 조직이 잘 되어 있었고 출마준비까지 다 해놓은 상태에서 전경환 회장을 지지하였다.(당시 필자는 반공연맹 사무국장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대통령 가족 주변에 사기꾼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보고가 청와대에 올라가서 부장판사 출신의 대쪽같은 유상호 의원님을 공천한 것으로 압니다.”라고 하니 유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던 일이 있다. 유前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을 하며, 모든 청탁과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 청렴하기로 이름난 분이었다. 그래서 당시 조직관리 등을 원리원칙대로 하며 당을 이끌었고 8년이나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한 일화가 있는데, 한번은 유 의원의 서울 자택에 합천지역구에서 올라온 어느 중년 부인이 꿀단지를 들고 와서 찾아와서는 “자기 남편이 사기죄로 교도소에서 3년간 징역살고 있으니 사면대상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사기죄요,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며 꿀단지와 함께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