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정병수
정병수
쌍백초등학교 총동창회장
지난 1월에 중국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에 갔을 때였다. 중국이 인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하얼빈시의 인구만 천만이라고 해서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초대 조선통감부 통감을 지내고 일본 수상을 4번이나 한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저격했을 때 단신으로 갔다는 점이다. 그가 체포 당시 러시아어로 까레야 우라, 까레야 우라!!(한국 만세)를 외쳤다니 숙연할 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가 쓴 옥중 붓글씨 중의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 새삼 떠올랐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냄새가 난다 해도 될 것을 굳이 가시가 돋는다고 했을까? 30여년 전 이집트에 처음 갔을 때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피라미드, 룩소르 유물 앞에서 인류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음과 동시에 수많은 노예들의 비참한 울음소리가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 중의 하나가 여행이 아닌가 싶다. 국내든 해외든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아무래도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듯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1년에 한두 번의 해외여행이라도 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기간은 가능한 1주일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1주일 정도 되면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편안한 집이 그리워지고, 집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경험법칙을 발견한 때문이다. 물론 6개월 정도 집에 있으면 어느새 ‘이번에는 어디로 가볼까?’라고 생각하며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내 자신을 느끼게 된다. 산이 있어 등산을 하듯이,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고 호기심이 살아있고 체력이 되는 한 나는 그냥 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하면 먼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함이 나의 마음과 발걸음을 옮긴다. 베네치아 출신인 마르코 폴로는 14세기 초 15살이 되었을 때, 상인인 아버지를 따라 동양의 원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가는 곳마다, 보는 곳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을까? 여행을 하다가 간혹 상상보다 아름답거나 특별할 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국경으로 하고 있는 이과수폭포를 봤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 정도로 알고 갔다가,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슈퍼 폭포 앞에서 넋을 놓은 적이 있다. 반대로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이 그랬다. 희망봉은 봉우리가 없는 바다 쪽으로 튀어 나온 곶(Cape, 串)에 불과하고, 최남단은 그 곳에서 160킬로 떨어진 아굴라스곶이란 것을 현지에서 알 곤 한숨이 나왔다.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의 차이를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내가 사는 곳과 비교하여 그들은 어떻게 살며, 주택이나 건물 양식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들의 옷차림이나 시민의식은 어느 정도인지 특히 역사적 유물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해외여행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은 거창한 역사 탐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먹는 즐거움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일상의 음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여행이 좋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일 땐 짐을 싸서 떠나곤 한다. 이들은 주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여행이다. 나도 때때로 현실에서의 삶을 모두 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힐링을 하고자 할 때 여행을 떠난다. 언젠가 가족과 같이 발리섬에서 3박 4일 동안 휴가를 한 적이 있다. 발리섬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어서인지 모든 행동이 느긋하다. 그것에 맞게 맑은 공기, 한적한 거리, 쾌적한 날씨, 깨끗한 바닷물, 친환경 숲과 자연 동물원 등은 휴식을 하기엔 안성맞춤이고 스트레스가 쌓일 일이 없었다. 삿포르 겨울 온천여행도 힐링에는 빠질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일본다운 생활을 볼 수 있는 것이 겨울 삿포르가 아닌가 싶다. 눈이 평균 1미터 이상 쌓이는데도 체류하는 며칠간 자동차 크락숀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고, 눈 위를 달린 자동차라 지저분할 법도 한데 세차한 듯 깨끗하기만 하고 거리엔 휴지 하나 보이지 않으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얄밉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받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더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체력이다. 걷는데 지장이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여행지(旅行地)에서는 좋은 호텔보다 잠을 잘 잘 수 있는 숙소가 중요하다. 준비 없는 여행도 좋지만, 내 경험상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이, 여행지에 대해 미리 역사나 문화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난 뒤 간다면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있어 등산을 하듯이 미지의 세계가 있는 한, 그리고 호기심이 작동하는 한,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시에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고 노래하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