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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前대통령 회고록을 읽고 (3)-서정한

서정한
편집국장

전두환(全斗煥) 前대통령은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1947년 대구 희도초등학교,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였다. 1959년 1월 24일 이규동 장군의 장녀 이순자氏와 결혼했다. 1959년 6월 미 육군의 심리전 교육 연수과정을 이수한데 이어, 1960년 7월 미 육군 보병학교 레인저 과정을 수료했다. 1961년 5·16혁명 직후인 6월 국가재건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낸 뒤 1964년 8월 고등군사반 과정을 마치고 1965년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1967년 수경사 30대대장을 역임하고, 1970년 11월 9사단 29연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1973년 1월 육군 준장으로 1977년 2월 육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1978년 제1사단장 재임 중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되었다.
다음해인 1980년 봄에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국가개혁 작업을 수행했다. 이어서 8월에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80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9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81년 3월 개정 헌법에 따라 출범한 제5공화국의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국정의 기조를 개방과 자율로 전환하면서 획기적인 물가안정의 토대위에서 10%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물가안정, 성장, 국제수지 흑자라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했다. 88서울올림픽 대회를 유치하여 국가의 위상을 끌어올렸고, 교육개혁과 본격적인 정상외교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무엇보다도 1988년 2월 단임을 실천하고 퇴임함으로써 우리 헌정사에 평화적 정부이양의 전통을 세웠다.
회고록 1권은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혼돈의 시대에 관한 진실한 역사를 밝혀두었다. 페이지 53쪽에 김계원 비서실장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前대통령을 시해하는 장면을 바로 증언했기 때문에 범인을 바로잡고, 김재규를 영웅으로 만들려했던 역사를 바로잡았다.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을 차단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정승화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전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은 모두 서로 도와주는 한 세력이었다. 12·12사태에 노재현 국방장관이 협조함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방장관이 명령권을 지닌 합참본부장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면 그것은 곧 전군에 내리는 명령으로서 효력을 지니게 된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부하들에게 30사단에 대한 포격명령과 보안사령부 공격을 명령했지만, 수경사 헌병부단장인 신윤희 중령이 장태완 사령관을 체포해서 위기를 넘겼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박종규 중령이 체포했다. 이로서 젊은 지휘관들이 내전을 막았다.
페이지 259쪽에 “나는 그날 밤 그 혼돈 속에서 분별없고 비상식적인 상관의 공격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젊은 지휘관들의 이성과 그들이 보여준 단호한 용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긴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냉정하고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나라를 구하고 국군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책임완수에 목숨을 걸었던 나를 살려주었다. 나 개인으로서도 그들은 잊을 수 없는 은인이었다.”, “5·17 위기 수습은 최규하 대통령의 결단이었다.”는 다음 회에 기술할 것이다.
페이지 21쪽의 나의 대통령취임은 상황의 선물이고 시대의 요청이었다. 나 개인으로는 사적인 권력의지의 성취가 아닌 운명적 선택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으며 머슴처럼 일했다. 제5공화국을 권위주의 통치시대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머슴이란 내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군림하고 통치하려고 했지 봉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나는 당시 우리가 직면한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법이 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가장 능률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책무이기도 했다. 대통령직은 권위가 확립되고 대통령의 말에 영(令)이 서야한다. 나는 재임 중 국방상의 이유 이외의 목적으로 군을 이용한 일이 없다. 위수령(衛戍令), 계엄령을 발동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