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들면
문경자
논설위원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은 우선 겉으로 보기만하여도 음산하다. 우리 집도 비워 둔지가 오래다.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니 그 집도 생기를 잃었다. 도시에서 고향에 온 사람들은 우리 집을 팔 수가 없느냐고 물어본다. 집을 팔아버리면 벌초 때나 묘사를 지내러 갈 때는 쉬고 가야 하니 팔 수도 없거니와 부모님들이 남겨준 값비싼 유산이다. 값을 따질 만큼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손 때가 묻어있으며 일곱 명의 자식들을 재우고 보살핀 보물 같은 집. 서울의 고층 아파트도 부럽지 않다. 지금도 벌초 때 내려가서 구석구석을 점검해본다. 사람이 사는 집도 빈 집이지만 가축을 키우던 집도 다 비어있다.
사랑채에 소를 키우던 마구간, 돌담을 뼈대로 하여 만든 염소 집,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며 알밤을 까먹던 집, 퇴비를 모아둔 곳에 있는 높은 닭 집, 그 옆에는 토끼집, 삽작 입구에 지어둔 화장실도 호박 넝쿨만 무성하게 자라 다 덮어 버렸다. 마당 한 쪽에 서있는 대봉감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까치집도 빈집이다. 어머니는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있다 하며 바라보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와 이웃집에 살던 친척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심지어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제사 밥도 담장너머로 넘겨 받았다. 어머니는 제사 밥을 비벼 먹으며 그 집안의 내력이며 사람들의 됨됨이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제사 밥보다는 어머니 말솜씨가 더 맛있게 들렸다. 그렇게 주고 받던 인정도 어느새 사라지고 주인 없는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집은 봄이면 감나무, 석류나무가 잎을 달고 나온다. 여름에는 장독대 옆 맨드라미, 봉선화, 채송화가 피어 장독대 꽃 잔치가 열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운 그 집을 쳐다보며 주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집도 자식들이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집에 대한 관리도 소홀해졌다. 우리가 살고있을 때는 이웃사람들이 집에 들러서 마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목이 마르면 시원한 샘물도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마루를 쓸고 걸레질을 하였다. 요즈음은 시골도 주택개량으로 옛날 마루가 그대로 보존하는 집은 드물었다. 마루와 똑 같은 모양과 색을 골라 장판을 깔아 놓았다. 마루는 방과 방을 연결해주며 쉬는 곳으로 쓰여지지만 시골에서는 다양한 용도로도 쓰임새가 많았다. 이제는 우리 집 마루도 세월에 밀려 반짝이던 마루가 얼굴에 시커먼 버짐이 피었다. 하지만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때면 마루 틈 사이로 하얀 연기가 올라와서는 집안을 소독해주었다. 집안에는 온기가 돌아서 따듯하였다.
부모님의 따듯함도 사라 진지 오래지만 빈집에 들면 귀에 익은 가족들 목소리가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안방에 들어 서면 서랍장 위에 부모님 사진이 우리를 반겨 주는 듯 하다. 어머니가 쓰다 남은 물건들이 몇 가지 있다. 닳아 빠진 노랑 주전자는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부엌찬장 위에 걸려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 얼굴이 그려졌다. 막걸리 한 잔하고 그 기운으로 쉴 틈 없이 농사일을 하였다. 여름 해가 질 무렵이면 지게에 풀을 베어 들어오고 풀 냄새가 소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소는 긴 혀를 내둘러 풀을 맛있게 먹는다. 토끼와 염소가 먹을 풀도 베어서 먹여 주곤 하였다.
초원으로 변해버린 빈집.
손을 쓰지 못한 마당에는 온갖 풀들이 자라서 내 키만하다. 그 속에 묻혀있는 빈집은 여러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길게 누워있는 뱀 허물이며, 푸른 옷을 입은 청개구리, 부드러운 흙으로 통로를 만들어 들락거리는 개미집, 고양이들도 그곳에 새끼를 데리고 와서 쉬는 곳이다. 호박꽃이 피면 노랑나비 벌들이 날아와 드나드는 곳. 밤이면 풀벌레들이 연주를 하고 몹쓸 모기도 앵앵 소리를 내며 끼어든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제초제를 뿌려도 끈질기게 올라온다. 사람의 생명도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 풀잎이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시아버지는 ‘저기 저 풀은 죽으면 내년 봄에 다시 피지만 사람은 한 번가면 못 온다.’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무로 된 기둥은 아직도 송진이 나오고 어머니가 매어둔 나일론 빨랫줄이 거미들의 놀이터가 되어 먹이를 잡는데 한 몫을 하고, 창호지로 바른 문은 누렇게 변하였다. 삶에 무게만큼 빈집도 나이를 먹어서 몸이 상한 곳이 많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도 조금은 망가져 내리고 내가 쪼그리고 앉아 시집살이 힘겨워 부지깽이로 휘젓던 곳. 독한 연기가 내 얼굴을 지나가고, 나는 매워서 눈물 콧물을 흘렸다. 그런 집이 있어 좋다.
사람도 늙고 병들면 치료를 하 듯이 빈집도 정성을 들여 다듬고 가꾸며 생기를 찾아 숨쉬는 곳이 되겠지. 빈집을 수리할 구상을 하고 있다. 작은 나의 집을 꾸며서 은하수가 놀러 오고 달님 별님들이 내려와 앉아 함께 하고 싶은 집을 지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