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합천향토사연구회, 남명학 발원지 무민당 박인 선생 “벽한정”에서 학술토론회
“남명학 최초 발원지” 위상맞는 기념물, 체험관 등 필요
(사)합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성동)는 6월 25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 소재 벽한정(碧寒亭. 경남 문화재 자료 제233호. 1996.3.11지정)에서 무민당(无悶堂) 박인(朴絪. 1583-1640) 선생에 대한 학술 토론회를 가졌다.
무민당 박인은 남명의 대표적 사숙제자(私淑弟子)로서 남명 사후(死後) 남명의 연원록인 <산해사우연원록> 및 <언행록>과 <연보>를 당시 합천과 인근 지역 사람의 공의(公義)를 모아 이곳 벽한정에서 편찬한 사람이다.
이성동 회장은 “남명 선생은 너무나 유명한 한국 대표 선비중의 한사람으로 우리 합천의 자랑이다” 며 “그에 반해 남명에 대한 연구의 기초가 되는 ‘산해사우연원록’ 등을 편찬한 박인 선생과 이 곳 벽한정은 상대적으로 묻혀 있어 아쉽다” 고 말했다.
무민당 11대 후손인 문중 대표 박 원 용주면노인회장은 “무민당과 벽한정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시는 합천향토사연구회 회원에게 감사드린다”며 “무민당 선생과 관계가 있는 사우문인 후손과 문중 등에서 방문객이 자주 찾고 있지만 주차장, 편의시설 등이 부족해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관계기관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고맙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무민당 박인 선생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이곳 벽한정에 “남명학 최초 발원지”라는 표지석 설치와 춘.추 향사 제물대 지원 등을 (사)합천향토사연구회 명의로 군청 문화체육과에 건의하도록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또한 박인 선생은 학문적 능력이나 사우문인(師友門人)을 살펴보면 사회지명도가 대단한 인물임에도 그 동안 사학적(史學的)으로는 물론이고 교육학적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소멸되어 가던 남명학파를 재결집하려던 노력과 향촌사회에서 보여준 모범적인 지식인의 삶과 교육활동을 후세들이 본 받기 위해 유관기관과 향토사학자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행사에는 이성동 회장을 비롯한 회원 15명, 무민당 11대 후손인 박 원 용주면노인회장 등 문중 대표 5명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벽한정 기둥에 새겨져 있는 7언절구는 박인이 27세가 되는 해에 부친 수종(壽宗)께 과거를 포기하고 처사적 삶을 살겠다고 올린 <上廢擧業書(상폐거업서)>이다. 이 시를 올리고 스스로 호를 “임헌(臨軒)”이라 했다고 한다.
호월미풍제경천(皓月微風霽景天)
달밝고 바람불어 비갠 경치 맑았으니
천심징숙귀신경(天心澄肅鬼神驚)
하늘이 맑고 엄숙하니 귀신도 놀라도다
번사이십년전사(翻思二十年前事)
이십년 전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만축괴황오차생(謾逐槐黃誤此生)
부질없이 벼슬 쫓아 인생을 그르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