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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28) – 하재효

4. 최치원 선생의 신라 내직(중앙관) 생활
(1) A.D 885(29세. 헌강왕 11년)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으로 임명되며, 이는 당에 올리는 표문을 비롯하여 문서를 작성하는 직책이었다. 최치원 선생이 귀국한지 1년 만에 그를 아꼈던 헌강왕이 운명하였다. 「성안에는 초가가 한 채도 없고 처마와 처마, 담장과 담장이 잇달았으며 풍악소리가 길에 가득해 밤낮 그치지 않았다.」
(2) A.D 886(30세. 정강왕 1년) : 1월, 당에서 지은 「계원필경집 1부 20권, 중산복궤집 1부 5권, 잡시부 30수 1권, 오언칠언 금체시 100수 1권, 사금체시 5수 1권」 등 28권을 헌강왕에게 올리다.
(3) A.D 887(31세. 진성여왕 1년) :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명」을 완성하고, 888년 「초월산 대숭복사비명」을 완성하다.

5. 최치원 선생의 신라 외직(지방관) 생활
(1) A.D 890(34세) 7월 : 태산군(전북 정읍 칠보면 일대) 태수가 되다. 「삼국사기」는 최치원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당나라에 유학해 얻은 바가 많아서 앞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신라가 쇠퇴하는 때여서 의심과 시기가 많아 용납될 수 없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심경을 투영한 시 한 수를 소개한다.

돌 틈에 뿌리 내려 잎 쉬 마르고 / 바람과 서리에 자칫 꺾이고 상하네
가을 자태 자랑하는 들국화야 바라리오만 / 추운 날 끄떡 않는 소나무를 부러워하네
가여워라 고운 빛깔로 바닷가에 서 있건만 / 어느 누가 좋은 집 난간 아래 옮겨 심을까
뭇 초목과 다른 성격 지녔건만 / 지나가는 나뭇꾼이나 한 번 봐 줄는지 (김수영 譯)

(2) A.D 892년(36세) :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을 짓다.
(3) A.D 893년(37세) : 부성군(현 충남 서산) 태수가 되다. 조정에서 하정사(賀正使)로 당나라에 파견하려 했으나, 흉년과 도적이 일어나 중지되고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명」을 짓다.
(4) A.D 894년(38세) : 천령군(현 경남 함양) 태수가 되고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인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리나 시행되지 못하고, 신라의 작위 중 제6위에 속하는 아찬(阿飡)에 오르다.
(5) A.D 895년(39세) : 「해인사 묘길상탑기」를 짓고, 합포현 별서(현 경남 창원)에 머물면서 경주, 의성, 합천, 하동을 유람하다.
(6) A.D 897년(41세. 효공왕 1년) : 「사불허북국거상표 및 제왕연대력」을 짓다. (계속)

*바로 잡음(5월 25일자 본란 B.C를 A.D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