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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을 잃은 우리 사회 – 이호석 논설위원

일상에서 대하는 많은 사람의 얼굴이 대체로 무표정하게 굳어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웃음을 보기 힘들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 그러므로 밝은 얼굴, 웃는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 가진 행복감의 척도이자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얼굴들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 사회는 진정한 행복을 잃은 사회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릴 적이던 보릿고개 시절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인정이 넘치고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정겨운 이웃들의 참 모습들이 가끔 떠올라 그들과 대비해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거쳐 혹심한 보릿고개 시절을 겪었던 1960년대 전반까지는 개인이나 국가 살림살이가 정말 어려웠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들의 모습은 항상 밝았다.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려는 따뜻한 인정이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언젠가는 잘살게 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밝은 얼굴들이었다. 마을 내 어느 집에서 제사라도 지내는 날이면 그 추운 겨울밤에도 호롱불을 앞세우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제사음식을 정성스레 가져다드렸고, 다음 날 아침에는 온 마을 어른들을 초대하여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이렇게 집에서 조금만 맛난 음식을 해도 언제나 이웃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리고 농사일도 그랬다. 그때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돈이 귀할 때라 주로 품앗이로 농사를 지었다. 어느 집에서 모내기할 때면 온 마을 일꾼들이 함께 모여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일했고, 다음 집, 또 그다음 집도 그렇게 돌아가며 손을 모아 일을 했다. 그리고 일손이 없어 정말 어려운 이웃에는, 종일 자기 집 일을 힘들게 하고도 저녁 식사 후 달밤을 이용하거나 등불을 앞세우고 울력으로 그 집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또 돈이 없으면 예사로 이웃에서 빌려다 썼고, 농기구도 서로 빌려가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니까 항상 너와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삶이었다. 마을 어느 집의 경사는 마을 전체의 경사였고, 어느 집의 슬픔은 마을 전체의 슬픔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을 사람 모두가 가까운 친척 같이 살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모두가 어렵게 살면서도 항상 서로 돕고, 용기와 웃음을 잃지 않는 행복감을 가지게 하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기치 아래 전국적으로 불꽃처럼 타오른 새마을운동(사업)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열심히 일해, 반만년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혀왔던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몰아냈다. 그 무렵부터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나라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고, 국민의 생활여건도 차츰 좋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두터운 동질성을 가지고 ‘가난을 물리친다’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과 봉사로 일하였으며, 오직 부(富)의 축적만이 행복인 줄 알았다.
그 이후 국가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개인 살림살이도 눈에 띄게 좋아졌으나 전 국민의 60%가 넘던 농촌 인구가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또 농가의 주요 농기구도 지게에서 리어카, 경운기, 트랙터로 바뀌었고, 주거 환경도 도시 못지않게 좋아졌다. 지금 농촌은 고령화로 많이 쇠퇴하고 있지만, 청장년이 있는 농가에서는 보통 농사용 트랙터는 물론 승용차와 농사용 트럭이 있을 정도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고, 경제는 세계 10위권 안팎으로 농촌에서도 모두가 여유롭게 살고 있다. 이렇게 국가나 개인 모두가 보릿고개 시절에 비하면 엄청 잘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모습들이다. 특히 우리 농촌의 인심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웃 간에도 양보와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 자기가 제일이라는 듯 자만과 이기심만 가득하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우리의 생활이 예전보다 월등히 나아졌으면, 이웃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봉사하는 마음, 그리고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심과 행복감도 더 높아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고착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된 원인을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개개인 모두가 어려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모두 서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돈도 서로 빌려 써야 했고, 농사도 서로 품앗이로 도와가며 지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처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 행복감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이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 팽배해져 있다. 이러한 사회는 끝없는 욕망과 상대적 빈곤감으로 항상 불만과 불행 속에 살게 된다.
또 이렇게 된 데는 오직 잘살아보자는 기치 아래 나라와 개인 모두가 성공과 부의 축적만이 행복이라는 착각 속에서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하여는 너무 소홀히 하였고, 또 성급한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기초의원부터 대통령까지 각급 지도자들을 모두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면서, 선출된 이들이 국민 삶의 질 향상보다는 표만 의식하는 전시행정과 과도한 복지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명언이 있다. 사람은 절대 부(재물)의 축적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인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지난해 세계 58위라는 것만 봐도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결국, 행복은 우리 스스로가 높은 도덕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양식을 가지고 서로 배려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부(富)를 취하고도 항상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루빨리 치유하고,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갈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