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斷想(단상) – 佳松 허종학 가회중학교 재단이사장
2017년도 닭의 해, 새 달력을 걸어놓고 부푼 가슴으로 올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올 한해 12장의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아 세월이 유수와 같이 끊임없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눈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며 월요일인가 하면 벌써 주말이고 한 달 한 달이 휙휙 지나가 버린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가 급한 건지 삶이 짧아 진건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흐르고 마음속의 나는 그대로인데 세월은 빨리도 변하고 있다.
日暮途遠(일모도원)이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내 처지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9~11월 3개월을 가을이라 부르고 12~2월을 겨울, 3~5월을 봄, 6~8월을 여름이라고 부른다. 어째서 이렇게 계절을 구분해서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을의 계절을 살펴보면 9월엔 꽃도 피고 과일도 익고 오곡도 익기 시작하고, 10월엔 황금 들녘의 오곡백과가 한창 무르익고 하늘도 드높고 산과 들엔 형형색색으로 단풍들어 뭇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하고 마음도 몸도 살찌게 하며 대자연의 신비와 계절의 묘미를 느끼면서 삶의 질도 높여주고 삶의 보람도 맛보면서 사람들이 계절의 향기에 도취되어 정말 앞뒤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즐거운 계절이기도 하다.
코스모스, 들국화, 그리고 빨갛게 노랗게 예쁘게 물든 단풍! 이런 것들에 취해서 이곳, 저곳 좋은 곳 찾아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벌써 계절은 가을이지만 겨울로 접어들어 낭만이 흐르고 아름다운 가을의 향기를 한번 느껴보지도 못하고 그 멋진 가을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11월은 계절적으로는 가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만추, 늦가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는 단풍은 낙엽이 되어 뒹굴고 거기다 서리, 눈, 얼음 실제 행동은 겨울을 연상케 하는게 11월이다. 허기야 9월, 10월, 11월의 가을 석 달을 즐겁게 지낸 인생이나 가을을 가을답게 한번 보내지 못하고 겨울이 되어버린 인생이나 다 같이 해가 지면 돌아가야 할 곳은 자기들 집밖에 없고 세월과 인생이 흘러 죽음으로 가고 있는 현실은 서로가 다를 바 없다.
이랬던 저랬던 덧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가는 세월 속에 기껏해야 백년을 살지 못한다는 삶의 진리 앞에는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올 한해도 다시는 오지 못할 과거로 묻히려 한다. 환영받는 가을, 푸대접 받는 늦가을, 11월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단풍을 낙엽으로 만들어 가로변을 누비면서 오감이 없는 방랑인처럼 왔다 갔다 뒹구는 낙엽은 너무도 운치가 있게 하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이 가로변에 깔려있는 모습은 너무도 환상적이다.
어저께는 아이들과 수안보 온천을 다녀온다고 콘도에 예약을 했는데 떠나는 날 눈이 많이 온다고 하기에 걱정이 되지만 눈이 온다는 소식에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마냥 젊은 사람처럼 잠이 잘 오지 않고 마음이 들뜬다. 기상예보처럼 당일 날은 눈이 제법 많이 와서 산과 들엔 하얀 눈꽃으로 천지를 뒤덮고 있다. 농촌사람들과 산간에 있는 사람들은 눈 내림이 귀찮을 정도지만 도시사람들은 겨울 내내 눈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냥 즐겁고 보람된 여행이기도 했다.
그처럼 11월은 멋진 단풍, 살얼음, 첫눈 이런 것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가 너무 차가웁다. 없는 사람은 겨울보다는 여름이 훨씬 좋다. 더우면 물이나 바닷가, 나무 그늘에 가면 더위는 해결되지만 추위는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몹시 힘들고 어렵다. 어쨌든 좋고 나쁘고 싫고 해도 가을과는 이별을 준비하고 겨울과는 만남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晩秋(만추)! 늦가을의 서글픔이 전신을 휘어감아 온다. 군중 속에 고독이 있듯이 11월에도 멋과 즐거움이 있기에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도 같다. 새롭게 맞이해야 할 겨울을 위하여 깊어가는 가을을 정중히 보내드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