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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오흥선_ 미래포럼연맹이 합천을 확 바꿉니다

가야농협조합장 금권선거와 관련하여 공익제보자로 알려진 오흥선 씨가 공명선거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합천의 선거문화는 물론 건설적인 미래합천을 위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가칭)미래포럼연맹을 발족한다. 그가 꿈꾸는 합천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들어보자. /차성민 기자

미래포럼연맹이 합천을 확 바꿉니다

Q 지난 한 해 남달랐을 터인데 소회를 말해 달라.
A 앞뒤 보지 않고 뛰어다니며 “이게 어디 나라냐” 소리소리 질러댄 한 해였고, 하루하루 무척 힘들고 아픈 날들이었다. 연말이 되어서야 정신차리고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정말 상처 범벅이 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그러했으니 나 때문에 폭탄 맞으신 분들이 얼마나 그 고통이 크고 피해가 많았겠는가? 전혀 그분들과 사감이나 유감은 없었다. 허나 한가지 분명한 건 그분들도 나도 역대 지도자들이 만들어 논 막장이란 함정에 빠지고 돈선거 폭탄에 다친 피해자다. 암울한 현실의 우리 합천 오만 군민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일 것이다. 그래서 돈선거는 절대 안 되는 불법 중의 불법왕이다. 암튼 나로 인해 아프고 다친 모든 분들이 빨리 치유하고 정상을 되찾았으면 한다.

Q 지난해 가장 뜨거운 감자가 돈선거여서 군민 모두가 크게 관심을 갖고 지켜봤었는데, 그 과정과 성과를 조금 설명해 달라.
A 나는 이 막장사건을 신고하면서 처음에는 “신원은 비밀로, 뿌리는 확” 그렇게 당부했고, 또한 그것을 순박하게 믿었다. 당연한 그 요구는 그들의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신고순간 그 내용과 신원은 누설됐고, 손가락질과 각종 음해가 난무했다. 하여 선택한 방법이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끝낸다.”였다. 난 결심하면 곧 실행한다. 그래서 당선자와 몇몇 조합원을 찾아가 “주민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사건을 조기에 매듭짓자. 그래서 깨끗하고 멋진 차후 선거에서 명예를 회복하자.”고 자진신고가 최선의 방법임을 설득했다.
선거 직후부터 한 달을 그렇게 쫓아다녔지만 허사였고, 그리하면 할수록 그분들한테도, 수사관들한테도 웃음과 조롱거리로 전락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신고 후 늘 불안해하는 집사람 모르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어디를 가고 있지”라며 혼자 반문도 수없이 했고 너무 힘들고 속상해서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갔고, 그 원망과 분노는 차츰 도를 더해갔다.

Q 그 다음은 어찌 되었나?
A 그리 되니 심신도, 자존심도 다 찢긴 헌신짝처럼 느껴져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고, 진짜 돌아버리는 거 같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출근하다시피 경찰서를 찾아다니면서 “어디까지 왔느냐” 물어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마다 대답은 진짜 지겹도록 똑같아서 기가 막혔고 이게 나라인가 싶었다.
귀농한 합천이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반면 합천 걱정도 커졌다. 해서 이제는 맞받아 수사를 채근하면서 막장과 싸워야 하는 게 최선이라 작심했고, 그렇게 시작한 게 지역신문을 통한 ‘대통령님 여기 이 막장을 엄벌해 주십시오’, ‘이게 나라냐’ 하는 절규 그리고 ‘돈선거를 안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자 미래다’ 라는 대 군민 호소를 시작하게 됐다. 그처럼 광고내용의 수위를 조절하고 높여가면서 두 달 넘도록 때렸는데 그것도 허사였고, 소용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청와대와 국회도 찾아갔었지만 만나기가 별따기만큼 어려웠고, 만나도 경찰에 신고했으니 되었다 라는 답변이었다. 기가 차서 아예 머리를 바싹 밀어버리고는 검사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이 큰 해악의 뿌리를 놔둔다면 이게 나라냐” 라고 따지기도 하고, “난 아직 내 조국을 믿고 있고 검사인 당신이 곧 정의라고 믿고 있다” 라고 읍소와 압박을 병행하면서 이 노인 “목숨 걸고 끝까지 간다”라며 몇 차례 으름장도 놨다. 어쨌거나 이 전쟁은 미완성이다. 그 성과를 굳이 말하라면 “글쎄…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 그렇게 대신하고 싶다. 요리사가 뭔 요릴 했어야지 먹을 게 있지 않겠는가?

Q 돈선거의 해악이나 폐해에 대해서 말한다면?
A 무척 버거운 질문인데, 그건 “선거가 뭐하는 거냐” 하는 의문 속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는 바로 우리들을 위한, 우리들에 위한, 우리들의 제도가 아닌가. 물론 이 제도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가가 추구하는 목표, 목적에 부합하는 지도자선출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좀 더 직설적으로 설명하자면 이건 바로 우리들이 잘 먹고, 잘 살자고 만든 거고 조금 더 멀리 보면 우리 후손들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1500여일 만에 겨우 한 번 돌아오는 이 값지고 소중한 날을 돈 몇푼으로 서로서로 속이면서 잔칫날이 재미있다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정말이지 돈 게 아니라면 무엇이 돌고 미친거라는 말인가. 이런 토양에서는 자식이든 뭐든 낳고 기르기가 싫어 다 도망가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꿈을 꿀 수 있고 무슨 미래를 노래할 수 있겠는가? 이게 가장 큰 해악이며 폐해라고 생각한다.
Q 지난 인터뷰 때 <합천의 도>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다시 설명한다면?
A 합천의 도는 철학적 의미에서의 도가 아니라 그냥 쉽게 길 또는 이치를 말한거다. ‘막장선거를 안하는 거’, 즉 그게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모두 지켜야 할 ‘도’라는 이야기였다.

Q 그렇다면 도를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A 방법은 의외로 쉽고 또 많다. 첫 번째는 매우 간결하고 명쾌한 방법인데 너나없이 후보들이 돈을 안 뿌리면 된다. 두 번째는 우리 모두가 절대 돈 안받고 배달 안하겠다는 “으쌰으쌰 돈안받자”라고 오만군민 궐기대회를 딱 한 번만 가지면 된다.
세 번째는 돈선거 신고자에게 1억 이상 포상을 하고, 걸렸다 하면 엄벌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면 된다. 네 번째는 군의회에서도 돈선거 신고자에게 고액의 포상이나 표창 조례를 만들어 군수로 하여금 시행토록 하면 된다. 다섯 번째는 수사기관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선거사범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면 부정선거는 근절될 수 있다고 본다. 여섯 번째는 군수의 의지인데 당근과 채찍을 높이 들면 된다.
이 밖에도 좋은 방법은 많지만 위의 여섯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만 시행해도 합천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A 곧 합천의 미래를 열어갈 <미래포럼 500인연맹(가칭 미포련)>을 창립할 예정이다. 미포련은 전혀 새로운 순수 자생 농민운동단체로서 소멸의 위기에 놓인 우리 고장 합천의 암울한 미래를 반전시키고자 뜻있는 동지들이 모여 설립하는 평생동지의 단체다.
물론 첫 과제는 막장을 없애는 건데 미포련의 막강한 실력을 믿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고장의 바른 지도자가 선출된 후로는 우리 강산, 유적 등 자연환경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데 심혈을 쏟으면서 관민이 힘을 합한 ‘미래합천 30년 중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향후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주도할 것이다. 미포련의 원대함을 지켜봐 달라. 인구 10만, 재정자립도 70%이상의 최상의 도시가 될 것이다.

Q 혹시 정당에 가입했던 적이 있었나? 금번 선거를 앞두고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있는지?
A 암울했던 시절인 1965년도에 야당 중진인 조재천 의원 등으로부터 수차례 민주당 입당권유는 받아보았지만 입당경력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제 정치성향은 안보를 우선시하는 진보 내지 횃불이라고나 할까? 우리 합천의 미래를 생각해서 누구보다 ‘젊다, 깨끗하다, 흠 없다’라는 순서로 해당하는 후보를 찾아 지지하고 싶다.
지금은 비교적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시대다. 그래서 고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나 군수, 국회의원 정도는 기대에 어긋남없이 해낼 수 있도록 조직이 짜여있어서 책 한권 더 본 실력이나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정당의 정치경력 그리고 썩고 병든 군경력, 공직경력보다는 정신과 혼이 더럽혀지지 않은 신선하고 배짱 있는 지도자가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따라서 ‘미포련’에서는 깜이 안되는 사람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회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처럼 회칙에 따른 미포련의 심사과정을 거쳐 유력후보가 확정되면 회원들은 모두 사견을 버리고 자신들의 집안 표도 몰아주고 지지, 홍보운동으로 또 다른 표도 모아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당선될 거고 부산물로 돈선거도 확실하게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선거문제는 조합장선거부터 국회, 대통령선거까지 그렇게 준비하고 대응할 것이다.

Q 끝으로 지난 인터뷰 때 “정치적 탄압이 있었다. TV광고를 할 정도로 크게 사업을 했다”라고 했었는데 좀 더 상세하게 말해준다면?
A 정치적 탄압이라고 하기 보다는 젊어서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당시 그렇게 두 차례 고문을 받았다. 박정희 때는 1965년 2월 광복 이후 처음으로 서울 한복판에 있는 소공동 조선호텔에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문제로 일본외상이 왔다고 일장기가 게양됐었는데 그것을 볼 수가 없어 정사복형사들이 둘러싼 호텔 안으로 달려가 일장기를 끌어내리곤 모진 고문을 받았다. 또한 전두환 때는 민간인 신분으로 보안사령부 지하 조사실로 끌려가 저술한 책 내용 때문에 보안사요원인 군인들에게 고문받은 이야기였는데 그거 상상이 가겠는가? 그 때가 1987년 2월 2일 이었는데, 최근 개봉영화 ‘1987년’의 시발점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바로 직후였다.
사업 이야기는 보안사 고문이 있기 10년전 CM송과 CF를 제작해 TV광고를 하면서 패션사업과 호텔사업을 했던 이야기다. 모두 옛날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도 저서 ‘오만상’에 쓰여 있다.

Q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 계획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
A 인터뷰 기회를 준 합천신문에 고맙게 생각한다. 미포련에 대해 군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