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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장풍득수(藏風得水) 이야기(135) –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번지.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물이 빨리 흘러 들어오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호암생가(1910∼1987)는 1851년 이병철 선생의 조부께서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바위의 모양이 마치 벼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아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 되기도 했단다. 바위가 마치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여 관광객들은 한 번씩 안아보며, 재물복이 쏟아지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호암선생의 조부 묘소의 위치는 마두산 기슭인 유곡면 마두리 안골이다. 자굴산이 동진하여 우봉산을 만들고 이곳에서 동북진하여 마두산을 이루었다. 소조산(小祖山)인 마두산에서 동쪽으로 한 마디 나아가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동북쪽으로 옮겨 남향의 토형산(土形山)을 만들었다. 이것이 곧 입수산(入首山)으로 젖꼭지처럼 생긴 혈장에 한 옆으로 기울어 혈을 잡으니 얼핏 보기에는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 같으나 자세히 보면 와우형(臥牛形)이다. 속인이 보기에는 혈장의 생김이 묘를 쓸 자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혈장 뒤에 돌이 팔자형으로 벌려 있고 그 가운데로 맥이 내려오는 중에 좌우는 선익(蟬翼)의 모습을 띠고 있으니 혈이 분명하다. 또 청룡백호도 가까이서 받치고 있고, 기(氣)의 여운을 증거하는 전순(氈脣)이 바위로 병풍을 이루고 있으니 혈장이 더욱 완연하다.
물은 병오득(丙午得), 건파구(乾破口)이다. 수구는 지현(之玄)으로 물의 흐름을 더디게 해준다. 이런 형국에서는 발복이 빠르다. 더구나 안산에는 횡재봉이 붙어 있어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이 묘소는 와우형임에도 불구하고 풀을 쌓아놓은 듯한 적초형(積草形)의 산이 없고 혈을 뒤에서 밀어 주는 후고산이 조금 낮아 흠이 된다. 여기까지는 풍수가에서 전해지는 내용이었고, 약 20여년 전 풍수학인(風水學人) 12명과 현지답사를 간적이 있다. 처음 간곳이 호암생가인데 안채의 좌향은 癸坐이다. 癸는 박쥐(편복 蝙蝠)로 양 날개가 붙을 곳이 있어야 한다. 이집은 좌가 잘 맞아 있다고 보았다. 안채 옆 양쪽에 다 바위가 있다.
다음 찾아간 곳은 그의 증조부 묘소이다. 녹음이 우거져 힘들게 찾은 곳이 산중턱에 있는 묘소이다. 상석(床石)에 글자가 다 지워져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었으나 위의 내용으로 맞추어 보니 틀림이 없다. 와우형(臥牛形)이라고 하나 필자가 볼 때는 복호형(伏虎形)에 좌(坐)도 인좌(寅坐)이다. 호랑이는 높은 혈이 좋다. 역시 여기도 좌가 잘 맞았다. 전순 밑에 혈장을 지탱해주기 위하여 요석(要石)이 박혀있다. 혈장 밑에 요석이 축대 역할까지 하니 기(氣)가 누설되지 못하게 멋지게 잘 조화되어있다. 바로 이런 곳이 명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