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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도와 흑산도를 둘러보면서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여행할 기회가 있어서 전라남도 홍도와 흑산도 섬을 2박3일 기간으로 관광을 했는데 아침 6시에 출발하여 목포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었다. 예약된 식당에서 중식을 끝내고 13시 홍도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15시 20분이 되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불지 않고 파도가 쌔지 않아 멀미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선착장에 내리니 어찌나 바람결이 추운지 두터운 외투생각이 절로 났다. 안내자의 인솔 하에 호텔에 들렀는데 얼마나 방이 따뜻한지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18시 30분에 저녁식사를 끝내고 조금 쉬었다가 선착장 포장마차에 회를 먹으러 나갔는데 역시 밤이고 부둣가라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회 맛은 간곳도 없고 따뜻한 방으로 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6시에 끝내고 유람선을 타고 홍도를 한 바퀴 유람하였는데 정말 바위들이 대 장관을 이루었다.
홍도 제1경으로 불리는 남문바위는 홍도의 남쪽에 위치한 바위섬에 구멍이 뚫려 소형 선박이 내왕할 수 있는 석문으로 홍도의 관문이라 할 수 있으며, 홍도 해수욕장은 일명 “빠돌해수욕장”이라 부르는 이 해수욕장은 국내에는 유일하게 규암 자갈로 되어 있어 신경통이나 피부병, 무좀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바다 한복판에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슬픈여”라는 바위는 아주 옛날 마음씨 고운 부부가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갔다가 때마침 돌풍이 심하게 불어 많은 짐을 싣고 오던 배가 큰 파도에 덮쳐 파선되고 말았다. 이를 본 일곱 남매는 부모님을 부르면서 물살이 센 바다로 걸어 들어가 그대로 굳어 바위로 변해 버렸다는 전설이 얽힌 이 바위 외에도 많은 구경거리가 있어 하루쯤은 즐길 수 있는 코스라 생각되는데 바다 복판에서 조그마한 배를 이용하여 싱싱한 회를 바로 먹을 수 있는데 정말 A급 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럭저럭 바쁜 2시간 40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흑산도로 왔는데 이곳은 정말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면 여기에는 다른 것보다도 정약전 선생의 유배지가 있기 때문에 일찍이 역사를 통해 알긴 했으나 올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조선왕조 때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말미암아 유교를 아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시기인데 외국문물이 들어오면서 천주교가 들어와 포교활동을 펼 때, 다산 정약용 선생 집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평소 정약용을 시기하고 모함하던 무리들이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천주교에 깊이 관계되었음을 알고 정약용도 천주교에 관련된 자라고 상소문을 올려 할 수 없이 그렇게도 총애하던 정조대왕도 정약용을 귀양을 안 보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충청도 해미현으로 귀양을 갔지만 나중에는 둘째형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다시 유배 길을 나서는데 결국 형인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로, 동생 정약용 선생은 전라남도 강진으로 가게 되었다. 유배되어 16년간(우이도9년, 흑산도7년)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귀양지로 정해진 강진은 그래도 육지인지라 환경이 흑산도 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할 수 있다면 형을 강진에 머물게 하고 그가 흑산도로 가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 초당이란 조그마한 집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썼지만 아침이면 천일각이란 누각에 올라 흑산도를 바라보면서 자기 형님의 고생하는 것을 생각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흑산도는 하늘과 물이 맞닿는 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항시 형님 걱정을 해 오던 중 어느 날 정약전 형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땅을 치고 하늘을 쳐다보며 나의 큰 스승을 잃었구나 하면서 슬퍼하였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이 ‘약전형님을 생각하며’ 라는 시 한수를 소개하자면,

손암 형님께
(손암은 정약전 선생의 호)

살아서는 미워할 율정점 주막
문앞에는 두 갈래로 길이 갈렸네
본래 형제로 태어났는데도
지는 꽃잎인 양 각각 흩날리게 되었네
넓고 넓은 하늘땅 바라보노라니
예전에야 한 집이 아니었던가
짧은 인생살이 생각하니
슬픔이 끝이 없노라

골수에 사무친 깊은 비극
이별쯤이야 조그마한 근심일리라
뜬 구름 바람 따라 흐르는데
저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독룡(毒龍)들이 몰아 나를 가게 하였는데
구슬같은 두 줄기 눈물 마구 쏟아졌다오
적정없이 무성한 풀을 뜯는
저 숲속의 소(牛)가 부럽구나

찬바람 몰아닥쳐 내가 왔노라
걷고 걸어서 바닷가에 머무르게 되었네
우리 형님께 풍세가 사나워
크나 큰 바다 속까지 들어가시게 했네
남겨둔 아내는 생과부 되었고
이별한 자식들은 고아가 되었노라!
형님은 유배되어 신지도로 들어갈 때
활달하여 기쁜 듯이 하셨네
가슴속에는 호걸스런 기상이 있어
아무리 누르러 해도 다시 일어났노라
해와 달이 방안을 비추일 때마다
형님 생각에 슬퍼지네

초라한 밥이지만 혹 마시어 양생하소서
황제가 비록 부자이나
두 사발 밥 밖에 더 먹겠는가
계신 곳 외로운 섬이니
사람 눈으로는 아득하여 바닷물만 가물거리네
우리 집안 무너진지가
그 사이 5년이 되었습니다.
장다리꽃 정원에는 티 없이 깨끗한데 병을 털고 일어나자
옛직하던 저술 계속 한다오.

꾀꼬리 오지 않아 봄도 고요하고
녹음이 무성해지니 대낮에도 어둑어둑
채석강 배안의 비단처럼 옷만 남고
동파의 지붕 위 구리처럼 밥은 없구나
사미(沙尾)로 집을 옮겨 살 수만 있다면
바다에 파도쳐도 갈 길이 막혔다고 다시금 울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