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수필| 감자 심는 날 – 주영국 논설위원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집사람이 오늘은 감자를 심어야 한다면서 은근한 걱정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다. 나에게 바로 일을 강요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 보름 전쯤부터 무단히 왼쪽 엉치뼈가 아프다. 일상의 움직임에도 짜증스럽고 부자연스럽다.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 다니며 주사도 맞고, 침도 맞으면서 물리치료도 계속하지만 잘 낫지를 않는다. 병원이나 한의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은 아픈 곳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치료법도 제시하지 않고 시일이 좀 걸릴 것 같다는 말만 성의 없이 되풀이한다.
집사람이 나의 몸이 이런 상태임을 알면서도 도움을 바라는 것은 오늘 일이 혼자서 하기에는 그만큼 힘들고 버겁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귓전으로 흘려듣는 척 하였더니, 눈치를 보던 집사람이 결국 정식으로 요청한다. 오늘 감자를 심으려면 밭에 가서 땅을 일구어 이랑도 새로 짓고, 비닐도 덮어야 하므로 아무래도 혼자서는 힘들고 바쁘겠다며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도와달라고 한다. 평소 집안일은 집사람이 거의 다 한다. 그런 생활력과 알뜰한 모습이 떠올라 오늘은 억지로라도 내가 일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 감자 심을 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마늘밭 뒤편에 비워둔 제법 긴 두 이랑인데, 땅이 오늘같이 꼽꼽할 때 심어야지 좀 더 마르면 안 된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그럼 가볼까?’ 하면서 집사람을 따라나섰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 땅이 너무 추져서 자꾸 늦어졌다며 괜히 하늘을 원망한다. 하기야 모든 종자를 파종하는 시기인 봄 날씨가 잘해야 그해 농작물의 성장이 좋고, 수확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밭에 도착하여 나는 삽으로 두둑을 파서 흙을 뒤엎고 괭이로 고루고, 갈쿠리로 긁으며 이랑을 지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집사람은 잠깐 쉬고는 연이어 뒤쪽에서 모종삽으로 감자를 지그재그로 심어 나온다.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리고 마무리 작업으로 이랑에 비닐을 씌우고, 양옆의 골 흙을 조금씩 끌어다가 비닐이 바람에 날지 않도록 덮었다. 작업은 점심때가 채 안되어 모두 끝이 났다. 몸에 좀 무리가 오고 아팠지만, 그래도 집사람 혼자 하도록 놔두지 않고 도왔다는 마음으로 정신적 피로가 감소되면서,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몸이 좀 불편하면서도 이렇게 함께 일을 해낸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여기서 무슨 일이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봉기댁과 야천 아지매가 밭 옆을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참 재미나게 일한다면서 칭찬을 한다. 노년의 부부가 같이 일하는 모습이 보기도 좋고 부러웠던 모양이다. 옆에 일찍 심어 놓은 마늘밭은 벌써 푸른빛이 가득하다. 조금 지나면 오늘 심은 감자 이랑에도 푸르름이 더해지고, 흰색과 자색 꽃이 예쁘게 필 것이다. 금방 심은 감자밭을 보면서 벌써 예쁜 감자 꽃과 수확할 때 주렁주렁 달려 있을 감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즐겁다.
우리는 오늘 감자 심을 곳에 미리 거름을 내고 이랑을 대충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 일하기가 많이 수월했다. 감자는 전분이 많아서 식용으로 널리 쓰인다. 나도 감자 부침개를 좋아한다. 오늘 몸이 불편하면서도 내가 먹을 감자를 내 손으로 직접 심고 나니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고 상쾌하다.
감자 심는 일을 마치고 또 각자의 할 일이 있었다. 나는 고추와 호박 심을 곳에 내려고 모아둔 퇴비를 뒤적이며 손을 보았고, 집사람은 김치를 담는다며 쪽파를 뽑고, 또 저녁에 쑥국을 끓여 먹자며 밭둑에 돋아난 쑥을 뜯는다. 저녁상에 오를 보드랍고 향긋한 쑥국을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정년퇴직을 한 지가 한참 되었지만, 나는 그동안 밭작물을 파종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모두 집사람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오늘 감자 심기에도 그저 따라 다니며 괭이나 삽 등으로 땅을 파고 덮고 하는 이런 일을 도와준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평소 농사일을 주동하는 집사람에게 항상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픈 데가 다 나으면 더 열심히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겠다.’ 라고 하였더니, 오히려 집사람은 몸도 불편한데 오늘 너무 수고가 많았다며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감자 심는 날’ 오늘은 참 흐뭇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이런 즐거움이 농촌의 노년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와 행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