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 (43) – 하재효 논설위원
8.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에 남긴 흔적
(17) 우리나라에는 종교분쟁이 없다.
고운 선생은 3교(유교, 불교, 도교)에 내재한 융합정신을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 연면히 흐르고 있던 전통 사상과 결국 하나의 도로 귀착됨을 밝혔고, 그것을 ‘풍류도(風流道)’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풍류도’는 알게 모르게 한국문학과 사상의 주류를 이루면서 연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우리는 고운을 ‘동국문종(東國文宗)’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김중렬 교수는 [고운 문학사상에 관한 연구]에서, “풍류도는 3교(유.불.도)의 어느 한 사상에 속한다고 볼 수 없지만, 이것은 유교의 덕치주의 이념과 당에서 풍미했던 도교정신, 불교사상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사상이다. 고운의 실제 생애를 개관해 보더라도 쇄망해 가는 조국을 살리기 위하여 시무십여조를 올리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하였다. 결국 나라는 망하였지만 고려에 귀의하지 않은 것은 불사이군(不事貳君)의 유교적 삶이었다. 해인사에 들어가 살면서 자살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적 삶이었다. 그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종말은 도교적 삶의 구극의 표상이라 하겠다.”
고운의 ‘풍류도’에 녹아있는 종합사상은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다. 여기에서 종교분쟁이 싹틀 수 없음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다. 앞으로 세계인은 종교분쟁을 극복하기 위하여 ‘풍류도’를 찾게 될 것이다. 풍류도는 세게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18) 최치원 선생의 ‘풍류도’가 품고 있는 주변 사상(학문)
앞으로 생기게 될 고운선생 연구원(풍류문화 연구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학문과 사상이 궤(軌)를 같이하여 연구될 것으로 본다.
단군의 홍익인간 천부경, 화랑정신, 명군(明君) 또는 성군(聖君)의 대명사인 요(堯)순(舜) 임금, 유·불·도교, 기독교.
(19) 해인사 부근(萬壽洞)에 ‘고운(풍류사상) 연구원’이 서야하는 이유
선생의 머무른 기간이 길다. 말년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저술 활동이 많다. 님긴 유적이 많다. 해인사의 모든 유적과 인프라가 유지된다. 낙화담에서 목욕을 하고 ‘천불동 길상봉’에서 신선이 되었다.
(20) 최씨 문중 및 종손 최평열 옹에게 드리는 말씀
자랑스럽고 청사에 빛나는 고운 선생을 모시고 계시는 문중 및 종손 최평열 옹에게 깊이 존경의 말씀 올립니다. 그동안 최치원 선생에 대한 글을 게재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용서바랍니다. 그러나 고운 선생은 귀 가문의 어른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어른이고 국제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평열 옹은 필자와 고향 선후배이면서 친분이 두터운 편입니다. 그동안 유지한다고 가정사에 어려움이 많은 부분 충분히 이해됩니다. 개인의 능력에는 한계가 따릅니다. 개인의 어려움도 해소하고 고운의 유지도 받들기 위하여 각계 각층의 의견을 함께 공유하리라 봅니다.
최고운에 대한 글은 몇 년을 올려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글을 올리면서 중복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선작의 판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혹 한 구절이라도 처음 공개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보람으로 삼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만수동으로 피난 온 사람 중 ‘사명대사’에 대하여 자료가 준비되는 대로 연재하겠습니다.
* 참고자료 : 삼국사기. 일곡문고 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