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8월 그 한 날의 박물관 스케치 – 송염만 소설가
지난 8월 2일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홍보지원단 제1기 교육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6주에 걸친 교육에 빠짐없이 참여한 수강생들이 교육장 합천박물관으로 몰려들었다. 해 뜨는 시각부터 시작되는 유난한 폭염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참석한 인원이 40여 명. 가야문화재에 대한 남 다른 열정을 지닌 이들은 청림문화재 연구소 박승규 소장의 인솔 하에 옥전고분군에 올라 홍보지원단 발대식을 행하고는, 마지막 시간으로 김해 박물관으로 답사를 떠났다.
따지고 보면 가야유적의 주목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이 대상에 오른 것은 3개 고분군으로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그리고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가야고분군의 세계 유산 등재신청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른 바, 지난 해 12월 완전성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유산을 추가하라는 문화재청의 권고안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상남도와 전문가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충족되는 4개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성 송학동,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그리고 합천 옥전고분군을 추가 하게 된 것이다. 옥전 고분군이 포함됨으로써 그동안 다라국 유적의 소외로 합천 군민들이 토로했던 아쉬움을 들 수 있게 되었다.
발대식을 마친 홍보지원단이 버스에 오른 것은 오전 11시 경, 태양의 유래 없는 뜨거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승규 소장은, 대학시절 풋내기 고고학도로서 다라국 유적을 발견하고 발굴하던 당시를 회고했다.
80년대의 합천, 특히 쌍책면의 교통여건이란 교량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와 일행들은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만으로 열악한 도로상황을 헤치고 이곳에 도착해 옥전으로 오른다. 그곳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구릉을 헤치다가 일단의 도굴꾼들이 파헤쳐 모아놓은 미처 다 가져가지 못한 유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옥전고분군 발굴의 계기가 된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목록에 오른 이 유적이. 한 풋내기 학도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미래에 불어닥칠 태풍을 예견이나 했을까.
박승규 소장의 회고담은 더 길었다. 오후 1시 경, 버스는 김해 박물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일행들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을 밟았을 때는 땅도 하늘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까운 고령을 두고 왜 김해행이었던가. 합천 다라국, 그러니까 후기 가야의 형성은 금관가야라 일컫는 김해 가락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서기 400년 백제는 왜의 세력을 등에 업고 신라를 공격하는데, 이에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한다. 이를 받아들인 광개토대왕은 5만의 군대를 남쪽으로 보낸다.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라지만 한반도 남부의 세력균형 유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백제와 신라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고구려의 위협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5만의 군대는 오늘날과 다른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이다. 도주하는 왜군을 추격하며, 김해지역으로 쳐들어온 고구려의 대군은 이 지역을 초토화 시켰다.
혼란에 빠진 무리들이 난국을 피해 낙동강을 따라 내륙으로 북상하였다. 시차를 두고 북상하던 그 여러 무리들이 황강에 접어들어, 지금의 쌍책면 일대에 자리를 잡게 된다. 해안 교역 중심지의 선진문물을 지닌 그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던 토착세력을 제압하거나 융화하면서 지배집단으로 군림하였고, 훗날 찬란한 문화를 지닌 다라국을 건설한 것이다. 따라서 다라국 조상의 나라는 김해 가락국이다. 때문에 홍보지원단의 김해 답사는 다라국 문화의 근원을 찾는 일인 것이다. 참고로 이 때 이곳 상책면에서 살았던 고대인의 이름이 문헌에 남아 있는데, 귀족 계층의 차한기 이타와 벼슬아치로 추측되는 이수위 흘건지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다섯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 도입의 장이다. 도입의 장에는 가야사 전문 작은 도서관, 기마체험 등이, 공간 가운데는 12배 크기로 만든 청동거울이 관람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음이 개관의 장으로, 가야의 기마무사와 보병을 재현하여 이미지화한 공간이다. 당시의 갑옷과 무기, 말갖춤 등을 잘 표현해 놓았다.
목관, 목곽묘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고분의 장은, 목곽묘 제작과정과 이 지역 유적분에서 출토된 대표 유물을 전시한 공간이다. 목각묘는 묘를 파고 나무곽을 싼 다음 그 안에 주검과 부장품을 매장한 무덤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음 딸린 곽이 추가되며 규모도 커져, 주곽에는 철기류, 부곽에는 토기류가 부장되었다. 목곽묘에는 화로모양 토기, 고배, 그릇받침 등의 다양한 토기류와 대형 덩이쇠 갑옷과 투구, 각종 마구 등의 철기류가 다량으로 부장되어 있어, 당시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풍부하게 말해 주고 있다. 또한 거울, 청동솥, 청동 띠고리, 방패꾸미개, 등의 외래계 유물의 부장은, 이곳이 활발했던 대외 교류지역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상식화되어 있듯이, 가야는 철을 매개로하여 동아시아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가야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교류의 장이다. 가야는 철이 풍부하게 생산된 지역으로 다양한 생활도구와 농기구, 무기류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철기류는 농어업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높여, 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마지막이 문화의 장인데, 이곳 고분군에서 나온 유골을 복원하여, 가야의 여인을 추정해 본 화상이 걸리어 있다. 이를 통해 금관가야의 매장풍습과 가야인의 형질을 학습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이 장에서는 전기 가야가 쇠퇴기를 맞는 전환점으로 고구려군이 대대적으로 침공한 서기 400년, 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가락국 유적을 관람하고 빠져나온 일행들은 박물관과 연계된 봉황대 유적을 찾았다. 이곳에선 창고, 망루 등으로 사용했던 고상 집, 오랜 세월 쌓인 패총을 살펴보며, 고대인들의 주거문화와 식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후 4시 경, 수강생들은 합천박물관으로 돌아왔다. 합천지역 폭염은 여전히 드세었다. 더센 더위 속에서도 이날을 유종의 미로 장식한 수강생들의 가슴엔 가야문화재에 대한 더욱 깊어진 이해력과, 또 다른 애정이 싹트고 있었다. 경상남도는 옥전고분군을 2019년 7월에 세계유산 최종등재 신청대상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후 2020년에는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고,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확정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합천의 홍보지원단은 헌신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조영제(경산대 박물관관장)저. 옥전고분군과 다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