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특집

“골짝안에 너른 들판, 동부5개면 사람이 득실득실 모이던 시장”

특집 <초계시장 살펴보기>

강 따라 들어온 소금과 농산물 교환하며 자연형성
동부5개면에서 가장 큰 시장

밖에 나가 초계시장에서 왔다고 하면 듣는 소리가 “골짝안에 그리 큰 들이 있더라”하는 소리라고 한다. 적중면과 초계면 2개면이 한 들판에 모여 있는 곳을 그렇게 본 것이다. 이 너른 들의 유래를 운석충돌로 인해 생겨난 분지로 보고 있다. 어릴적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던 그 ‘별이 떨어진 곳’인 것이다.
초계장은 합천 동부5개면에서 가장 큰 장이다. 초계장은 가야장과 마찬가지로 5, 10일장이다. 근데 특이한 점은 31일이 있는 달은 30일장이 없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31일장이 선다고 한다.
합천군사를 살펴보면 초계시장은 관평리 앞 도랑과 사정교 다리 밑에 있다가 1938년부터 오늘날 시장터로 이전했다고 한다.
초계장이 서게 된 배경에는 첫째 식생활에 필요한 소금이 감물창 나루(청덕면 남베나루 앞)에서 배로 들어와 성산나루(지금의 쌍책면소재지)에 닿으면 쌍책, 초계, 적중 지방의 주민들이 자기 농산물을 직접 교환하던 것이 자연스래 시장형성으로 이어졌고 근방 행정의 중심인 초계 소재지에서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38년에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시장터로 옮겼다가 1976년 소도읍가꾸기 사업으로 현대화 되어 부지가 2천700여 평이다. 2009년에 아케이드가 설치됐고 2011년에 주차장 조성이 되고 계속 시설개선공사가 진행중이다. 점포수는 73개이다.
초계시장번영회 김완석 회장(청계기물상회 대표, 932-1853)에 의하면 본인은 1944년생인데 기억에 의하면 사정교 다리 밑에는 우시장이 열렸고, 지금 80살 되시는 분들의 기억에도 시장은 계속 현재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쌍책면 소재 성산시장은 당시에도 가보면 초라했고, 또 얼마 안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목재에다 양철지붕을 얹어 지은 조악한 형태의 시장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이곳이 황무지였고, 땅이 고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장상인들이 자발적으로 가게를 짓고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기억으로는 43년전부터라고 한다. 1975년경이다. 그때 자발적으로 상인들이 장사를 하며 시장이 형성됐는데, 건물이 조악하니까 당시 도지사가 왔을때 건의해 신축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때 번영회주체는 시장상인이 아니고 당시 유지들이 맡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지들은 시장상인들이 논팔고 소팔고 해서 만든 시장을 합천군 소유로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상인들이 항의하고 군에 찾아가는 소동이 있고 난 후에 개인이 기여한 부분을 인정해 20년을 건물사용료를 면제해주고 부지이용료만 내었다고 한다. 20년이 지나서부터는 땅, 건물 사용료를 전부 주고 있다고 한다.
초계시장은 잘 나갈 때는 사람이 득실득실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점심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인근 율곡사람까지 다 여기로 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교통이 안 좋을때이고 재를 넘고 걸어서 다 왔다고 한다. 그때는 참 재미있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될 때라 권리금도 읍내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어떠냐고 하니, “워낙 장사가 안되니까, 특이한 것은 없다. 대개 농산물이 주류이다. 음식이라면 단팥죽, 돼지국밥, 최근 생긴 바지락 국숫집 등 몇 곳이 있다”고 한다. 지금 시장에서 장사만 하는 집은 대여섯 집 정도인데 다들 농사일 겸해서 하고 있다고. 기름집, 방앗간, 지업사 등은 기술이 있으니 대형마트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라 (자립이) 가능한 것 같단다.
최근 초계시장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붕 비새는 것이나 이런 것은 잘 되어 있는데, 요즘 장사가 안 되고 하니 사용료를 조금 내려줬으면 한다. 초창기 상인들이 직접 건립한 부분도 있고 하니 참작을 해줬으면 한다고. 또 최근 관내 버스요금이 1,000원으로 고정이 되자, 동부에서 초계장으로 와야 할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읍내장으로 가버린단다. 정말 심각하게 장날 손님이 줄어들었다.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니, 행정 담당자들도 교통편리를 주고자 이런 정책을 냈는데,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다고는 한다는데, 이런 부분이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인욱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