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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공원석 전 합천중학교장

요즘 같으면 언어폭력으로 문제 삼고도 남겠지만 다들 꾹 참고 넘긴 그런 시대가 지나간 지도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당시엔 어느 직장에서나 선배에게 심한 말을 바가지로 먹어가며,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자상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결과만을 놓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시집살이 고되게 겪은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노릇한다.”는데 내가 봉직한 교직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매우 약했고, 일찍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엔 아직도 여전히 위험수위의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근래 어떤 분의 검찰공소장 내용의 일부만 봐도 그렇습니다. 직원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말을 내뱉은 사례가 드러났습니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험한 말들을 입에 올렸다는 자체가 무섭습니다. 이는 나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고,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 못지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언어폭력은 “보이지 않는 칼”이라고 심리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 이유는 말로 받은 마음의 상처는 몸에 난 상처보다 훨씬 깊게 새겨져 더 오래 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말 폭력에 노출될 때의 피해는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학자들이 이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우울과 불안을 겪게 될 뿐 아니라 뇌의 연결회로에 문제가 생겨 언어능력이나 이해력 저하까지 나타내게 된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언어의 행태가 순화되기는커녕 더 심해지지를 않나하는 걱정스러워 움이 듭니다.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몰상식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가히 고질병 수준입니다. 도를 넘는 모욕적인 표현이 횡행하는 것도 볼썽사납기만 합니다. 욕설엔 정화(淨化)의 효과가 있고, 물리적인 고통을 완화시켜준다는 이론이 있긴 합니다. 극심한 산고를 겪는 산모가 무의식 중에 사나운 말을 해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흠집 내려는 목적이 없는 말로 언어폭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악담을 퍼붓는 ‘욕쟁이 할머니’를 우리는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 이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이 때는 작정하고 내지르는 공격적인 욕설이나 말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너나없이 세치 혀를 쓰는 일에 좀 더 조심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칼이 될 수 있다는 예는, 언젠가는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해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혀엔 뼈가 없지만 심장을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고리타분한 헛소리로 받아넘겨선 안 됩니다. 거기엔 오랜 세월의 경륜에서 얻어진 진리가 담겨있으므로 누구에게나 실천이 꼭 필요한 경고음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