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2편 남명 선생의 경의사상을 잇는 무민당의 흔적, 벽한정

8월 12일(월), 합천댐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황계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만나는 절벽 위에 있는 벽한정. 뒤로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앞으로는 황강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수 좋은 자리에 있다. 벽한정을 관리하고 있는 박영수 유사가 “합천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수심이 7미터 정도 더 높았고 주변은 반짝이는 은빛모래톱이 있었다”고 하니, 그때를 생각해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경상남도 문화재 233호인 벽한정은 산림처사로써 학덕이 높았으며 충성심과 유교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임헌(주역 임괘에서 따온 것으로 ‘군자가 남을 가르치는 생각은 무궁하여 백성을 보존함이 끝이 없다’는 뜻) 박인(1583~1640) 선생이 1630년(인조17년)에 여러 곳에서 모인 유학자들의 학문 연구를 위해 서재로 건립한 정자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써 마루를 깔았으며 건물 둘레에 계자난간을 설치했다.
남명 조식의 아들 조치마가 박인 선생에게 남명 선생의 연보와 사후록을 부탁했으며, 뒤에 남명연보, 언행록, 산해사우연원록 등을 지어 남명의 학문과 정신을 선양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인조가 청에 굴복하는 삼전도의 국치를 당하자 거처하는 곳의 이름을 ‘무민당’이라 고치고 문을 ‘절호문’이라 했다. 벽한정에는 여러 개의 현판과 시액이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 ‘경의’라는 현판은 남명의 정신을 잇겠다는 뜻의 표현이다. 오래된 흑백사진에 있는 유림들의 모습은 이들의 활동이 한 시절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벽한정 마당의 휘사무민당유택비에는 두 마리의 용이 하나의 여의주를 가지고 입씨름하는 듯 재미난 모습이 채색된 모습으로 남아 눈길을 끈다. 박영수 유사가 읽어준 유촉비문에서 박인 선생의 남명학 계승의 노력을 되새길 수 있었다.
어디에 내놔도 모자라지 않은 수려한 자연환경을 지닌 벽한정과 합천이 낳은 대선비인 무인당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벽한정에 사람의 숨결로 활기차길 바란다.
/전병주 시민기자
<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2편
이번 호부터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본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