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3편 국난에 나라를 구한 의병을 기린 합천군 창의사

요즘 가장 핫한 이슈가 되어버린 ‘NO Japan’. 전범 국가인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전국에서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외치는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문구가 뜨거운 무더위도 이길 기세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마음은 지금이나 같다. 합천에도 의병활동에 대한 역사적 장소가 있다. 8월 20일(화), 합천의 명물인 드넓은 합천댐과 악견산(634m)을 마주 한 합천군 대병면 창의사(彰義祠)를 찾았다.
창의사는 선조 25년(1592)부터 7년간 이어진 일본군의 침략전쟁인 임진왜란, 연일 패퇴를 하고 있는 관군을 보다 못한 양반과 농민들이 붓과 호미 대신 의병으로 나서 왜적을 격퇴했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래암 정인홍 선생 등 112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창의사 기념탑인 합천의병 조각을 보면 관복을 걸친 군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합천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미와 곡갱이를 든 평범한 모양이지만 국난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던진 숭고한 정신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
합천임란사에는 112분의 개인활약에 대한 기록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중에 이진문(李振文)이란 분에 대한 기록을 보면 “합천에는 정인홍(鄭仁弘)이라는 분이 래암선생(來庵先生)이라고 불려 평소의 권위에 외복하던 지방사민 전직 관인 및 문하생들이 함께 결속되어 창기”함으로써 지방토착세력을 규합해 그들을 전투적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 민중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이진문은 54세의 나이에 아들과 함께 결연히 동창의투했는데 난중(亂中)에 순절하자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마을 앞에 있는 사람처럼 생긴 돌을 바라보고 아들이 오는가 하고 만져보기까지 하니 마름들이 그 돌을 가르켜 ‘망자석(望子石)’이라고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렇듯 합천의 선조들은 국가의 난을 위해 홀연히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다. 옛 창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합천의 군민들이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선조들의 혼이 담긴 합천의 창의사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국난에 대한 알리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김공화 시민기자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본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