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문민공 신재 주세붕 선생

주영국
논설위원

주세붕(1495~1554) 선생은 호는 신재,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1522년(중종 17)에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1541년 풍기군수가 되어 이듬해 백운동에 안향의사당 회헌사를 짓고 1543년 사림 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의 첫 서원인 백운동서원(1550년 소수서원으로 사액됨)을 세웠다.
재임중 공삼(貢蔘)의 폐단이 심하여 군민들이 고통스러워하자 처음으로 소백산에 자생하는 산삼 씨앗을 풍기 땅에 인공재배를 성공시켜 인삼의 고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렇듯 유사 이래 보기 드문 ‘목민관’ 이라 하여 군민들이 뜻을 모아 선정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은 직제학·도승지·대사성·호조참판을 지내고, 황해도 관찰사·성균관 동지사·중추부 동지사에 이르렀다. 1677년(숙종 3)에는 예조판서에 추종되고, 1818년(순조 18)에는 문민이라는 시호가 내렸다.
선생이 남긴 주요 저서 중《죽계지(竹溪志 : 백운동서원 창건 전말을 적어 놓은 책)》가 있다. 여기 안동대학(퇴계학 연구소)에서 국역한 죽계지 해제편에 선생의 인간적인 특성을 기록해 놓은 내용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이 될 것 같아 그 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신재 주세붕의 인간적 특성
첫째, 효성이 지극한 분이었다. 7세 때 어머니의 병환 시에 머리의 이를 자기 머리로 마주 대어 옮기게 하여 제거한 것이나, 26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군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을 관찰사와 절도사 앞에 나아가 정성으로 변명한 것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부친이 작고하자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모발이 다 희어졌음도 그가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지를 알 수 있다.
둘째, 우애 역시 지극하였다. 4세 때 형이 종기로 침을 맞으면서 아파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운 것이나, 25세 때 몸이 아프면서 형이 돌아오면 병이 다 나은 것 같다고 말한 것에서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함을 알 수 있다.
셋째, 삼가고 성실한 관료인이었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말을 삼가고 행동을 삼가며 마음을 삼가라는 훈계를 받들어 스스로 ‘신재(愼齋)’라 호한 것이 그 한 예다. 이렇게 삼가는 성품이었기에 자랑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맡은바 관직에 충실한 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28세 때부터 사환길에 오른 이래 60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부모상을 치루는 기간 이외에는 관직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청빈을 높게 여겨 언제나 봉록이 남는 것이 있으면 이웃과 일가를 도와주어, 죽은 뒤에는 한 섬의 쌀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넷째, 덕화로 외치를 실현한 분이다. 외치도 교화로 일관하여 큰 성과를 거둔 분이라 할 수 있다.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처음으로 백운동서원을 창건하여 우리나라 서원의 남상을 이룬 것이나,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오륜을 널리 반포하여 노래하게 한 것, 그리고 문헌공 최충을 모시는 서원을 건립한 것 등이 모두 교화로 치민에 임한 것이다. 그리하여 미수 허목은 선생의 신도비에서 이르기를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의 권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벌을 주어도 백성이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섯째, 학문연구에 항상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 연보에 의하면 8세 때 소학을 읽으며 주자가 선성을 계승하여 후학을 깨우쳐 주었음을 알고 엄숙한 태도로 책을 대하였다고 하였다. 36세 때 회재에게 심경의 의심나는 바를 물었고, 41세 때에는 귀암 이강이와 더불어 ‘경(敬)’자의 뜻을 강론하였으며, 53세 때에는 대학의 이치를 강론한 소(疏)를 올렸다. 이렇게 그는 관직의 승진에 관계없이 꾸준히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였다.
신재 주세붕 선생이야말로 조선조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그는 어느 행위 하나도 유학적 규범에 벗어난 것이 없으며 스스로 삼갔을 뿐 아니라 치자로서의 임무에 충심하였으며, 서원을 세워 훌륭한 선비를 추앙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노래를 지어 오륜을 널리 폈을 뿐만 아니라, 공자와 맹자 등 성현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게 하였다. 그러면서 이황, 이언적 등 당대 석학과 교류하여 조선조의 학풍수립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신재 주세붕 선생!
선생은 합천고을이 낳은 대학자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의로움과 참됨을 지키며 높은 정신으로 삶을 살으셨던 선비의 흔적을 엿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