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듣다 지역지킴이, 소상공업자 (5편)|야들아! 법주는 천일상회에도 있단다
8월 29일(목), 합천의 특산물인 율피떡 공장이 있는 봉산면 초입을 지나 거창 방향으로 가다보면 소달구지도 힘들어 깔딱되며 넘나들었단 전설이 있는 ‘깔딱고개’를 만난다. 이곳의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있는 듯한 열 평도 덜되 보이는 귀엽고 아담한 천일상회를 찾기는 아주 쉬웠다. 앞면에서 보면 2층집처럼 보이지만, 도로에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 상점을 들어가면 다랭이논 형상을 한 진열칸들이 정글링처럼 연결되어있다. 비스켓 종류의 과자가 잘 정리되어 있고, 술, 통조림, 생수 정도가 모두 같지만 유독 경주 법주가 많이 있다. 정감이 가는 것은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주인은 전화를 하고 외쳐 부르고 나서도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오는 모양이 독특하다. 면사무소, 마을 이장을 통해 주인 류경순(여 84세) 할머니를 소개받았다.
아담한 키에 검게 염색한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는 호탕하고 걸걸하게 대화를 주도해 기자가 질문을 할 틈새를 자칫 놓칠 지경이었다. 밀양 박씨가 많이 사는 집성촌의 특징인 까닭도 있겠지만 이장은 마을노인회 총무 일을 보고 류씨 할머니는 노인회 회장 직을 맡고 있단다. 자칭 굴곡심한 인생사를 늘어놓으시는 내용은, 큰딸이 교사고, 훈장까지 받은 공군의 높은 사람인 큰아들과 두 딸 그리고 냉동 공학박사인 막내아들이 너무 잘 자라 주어서 여한이 없지만, 5년 전에 작고한 남편 박대구씨는 장돌뱅이 소장사라서 집안일을 모두 류씨 할머니가 해야 되었단다. 시어머니 배월선 할머님이 어린 손자들을 다 키워 주셔서 천일상회를 칠십년 넘게 꾸려 왔다며 시어머님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 그 당차던 모습은 간 곳 없고 갑자기 눈물 흘리시며 한참을 우신다.
천일상희의 시작 배경은, 이곳에서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경인(1950)년 추석 무렵 박종개 어르신이 시어머니인 배월선 어른을 만나 결혼식도 못 올리고 사신 후로, 방물장수 떡장수 하시던 배 할머님이 이곳에 터를 잡아서 호롱불 돌기름(등유)과 담배 파는 것으로 시작되었단다. 3시간 가까이 말씀하신 류 할머니의 일기장을 정리하면,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공짜차표도 끊어 주었고, 봉산지서에서 방위근무 하던 청년들이 담배나 통조림을 슬쩍해도 모른 척 눈감고 지난 세월이 이제는 추억이고, 이제 그놈들이 객지 나가 잘 살다가 애기들 손잡고 고향 찾아오는 걸 보는 낙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더라.”고 하신다. 24번 국도보수공사를 새로 할 때 급경사를 완만케 하면서 도로면이 두질(2~3m) 정도가 낮추어져 지금처럼 언덕 위의 점방이 된 후부터 손님이 줄었고, 합천호수에 오는 관광객이나 수상스키 선수들이 천일상회를 뜸하게 오며, 모두가 자가용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니 세월만 먹고 산단다. 딸 영미씨의 고운 눈총에 남긴 류경순 할머니의 소원은 어쩜 이번 추석에 이루어 질지 모른다. “이번 추석에도 명절이라고 고향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친지들께 드릴 선물을 도시에서 사지 말고 이곳의 천일상회에서 사주는 것이라니까. 차례주(茶禮酒) 청주는 많이 있으니까.”
/한봉수 시민기자
지역경제의 한 축을 든든히 맡고 있는 소상공업체를 찾아 그들의 경영철학과 애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바람을 듣는다.
(본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