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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돌멩이의 꿈 – 소민호 동화 작가

하얀 파도가 몽돌밭을 비질합니다. 또르르 쫘르르 몽돌 소리, 유리구슬이 구르는 것 같은 그 소리에 겨울바람도 슬그머니 돌아섭니다.
“아-, 좋다!”
“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아!”
가파른 언덕 위에 키 작은 나무들과 들풀들이 이파리를 모으고 바닷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달걀만한 돌들과 풍선만한 돌들이 몸을 비비며 파도의 장단에 맞춰 노래를 했습니다.
“허허허,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는 그저 생기는 게 아니지!”
멀찍이 서 있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말했습니다. 오래 산 탓인지 목소리 속에는 온 세상이 다 담겨 있는 듯 했습니다.
“휴-, 힘들어도 저기서 한번 살아 봤으면……!”
흙 속에 몸이 반쯤 묻힌 파인애플만한 돌멩이가, 언덕배기 끄트머리에서 몽돌밭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살아도 좋은 것이 있으면, 안 좋은 것도 있는 법이지!”
늙은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돌멩이의 말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것도 달라질 수 있겠지요.”
“그럼,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지.”
“나는 저 몽돌밭에서 꼭 한 번 살고 싶어요.”
돌멩이는 늙은 소나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은 몽돌밭에 가 있었습니다. 몽돌에 부딪쳐 잘게 부서지는 햇살, 별빛처럼 반짝이는 햇살이 메마른 돌멩이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습니다.
“얘,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잖아!”
“만약에 네가 저기 가면 몸이 산산조각 날 걸!”
언제부턴가 몽돌밭에 빼앗긴 돌멩이의 마음을, 친구인 들풀과 나무들이 바꿔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도 좋아. 흙에 파묻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돌멩이로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잘게 부서져서 모래가 되는 게 더 낫겠어!”
오랫동안 여문 돌멩이의 마음에 친구들 걱정 같은 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오직 반들거리는 몽돌들의 모습만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습니다. 돌멩이는 점점 외톨박이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몽돌이 되는 꿈을 꾸면서. 어느덧 들꽃들이 나비를 부르는 봄이 지나갔습니다. 따가운 여름 햇살도 주홍빛 가을 놀빛으로 사라졌습니다.
“휴-,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구나!”
쌀쌀한 바람에 흩날리는 마른 나뭇잎이 돌멩이 머리 위에 떨어졌습니다. 풀뿌리와 나무들은 몸을 옴츠렸습니다. 돌멩이 발 밑에는 어느 새 바늘 같은 서릿발이 돋았습니다. 땅 속으로 찬바람이 솔솔 들어왔습니다. 머리 위엔 하얀 눈이 쌓였다가 엷은 햇살에 녹고, 녹았다가 다시 눈이 내리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요. 겨울을 수없이 보냈던 돌멩이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허전했습니다. 하얗게 부서져 풀풀 날아오르는 파도까지 가슴을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돌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몽돌을 가슴속에 그렸습니다. 초록빛 나뭇잎과 들꽃들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춥고 긴 겨울밤, 파도까지 잠든 밤에는 앙상한 나무들과 마른 풀잎들의 잠꼬대로 뻥 뚫린 가슴을 메웠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지냈을까요? 가느다란 연둣빛 바람이 서릿발을 녹였습니다. 땅 속에서는 작은 씨앗들이 꼬물꼬물 기지개를 켰습니다. 어느 새 나뭇가지에 이슬 같은 잎눈과 꽃눈들이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 함, 잘 잤다.”
“돌멩이는……?”
“응, 그 자리에 있어.”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은 돌멩이부터 찾았습니다.
“돌멩이야, 올 겨울은 참 추웠지?”
“이제 봄이 왔으니 너도 덜 심심할 거야.”
“흥, 겨울이고 봄이고 내겐 소용없어.”
돌멩이의 목소리는 아직도 겨울바람처럼 싸늘했습니다.
“아니야, 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래, 너도 이 냄새를 한 번 맡아봐!”
나무들은 돌멩이의 눈치를 보며 실낱같은 봄바람을 가지 끝에 매달고 발돋움을 했습니다. 돌멩이도 숨을 살짝 들이마셨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러나 돌멩이는 금세 시무룩해졌습니다. 돌멩이가 기다리는 것은 그런 냄새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냄새는 너희들이나 많이 마셔!”
뾰족한 돌멩이의 말에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가지에 걸렸던 연둣빛 바람이 사르르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몽돌이 되는 꿈을 꾸고 있어?”
“그건, 헛된 꿈이야!”
“그럼, 여기서 우리와 편안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
들풀과 나무들은 돌멩이의 생각을 바꿔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너희들과 내가 똑같을 수는 없잖아!”
그런 돌멩이를 지켜보는 친구들의 마음은 더없이 무거웠습니다. 꽃샘추위가 앉은 자리에는 땅 속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꽃눈을 가지 끝에 매단 성급한 진달래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맸습니다. 그러나 돌멩이는 추위도 잊은 채 몽돌들을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싸늘하게 밀려오는 파도까지도 곱게 접어 갈무리하는 돌멩이의 속은 옹골지게 여물었습니다. 무서울 것 없이 날뛰던 꽃샘바람이 점점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휴∼, 이제 겨울이 다 갔나?”
“아니야, 그 심술쟁이 추위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몰라!”
“히히, 나는 천천히 꽃을 피워야지!”
철쭉은 웃으며 잎눈 몇 개를 흔들어 보였습니다. 진달래, 산벚꽃, 소나무들은 철쭉이 얄미운 듯 말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덕배기 친구들이 조잘대는 사이에 얇은 봄바람이 점점 두꺼워졌습니다. 늦잠에서 깬 작은 풀씨들도 꼬무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무스름하던 바다도 푸른빛으로 너울거렸습니다.
“야∼, 때맞춰 비가 오네!”
“그런데, 웬 바람이야?”
“바람이 점점 세게 분다.”
들풀들이 연둣빛 기지개를 켤 때, 장대 같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도 언덕을 무너뜨릴 것처럼 밀려왔습니다.
“무슨 봄비가 이렇게 많이 내려?”
“어쨌든, 바람이라도 안 불었으면 좋겠어!”
풀과 나무들은 몸을 옴츠렸습니다. 이제 막 터져 나오는 꽃눈이랑 잎눈들이 다칠까 봐 가지까지도 파르르 떨었습니다. 겁먹은 들풀과 나무들의 모습이 재미있는 듯 비바람은 더욱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큰 가지들이 휘청거릴 때마다 나무들은 윙윙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아야!”, “아앗, 내 가지 !”
여기저기에서 나무들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찢어진 풀잎들도 이리저리 날렸습니다. 뿌리 채 뽑힌 작은 풀포기들은 뱅글뱅글 돌며 멀리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앗, 아악∼!”
그때였습니다. 언덕이 무너지며 돌멩이가 아래로 굴렀습니다. 여기저기 부딪치며 빠르게 굴러 내렸습니다. 돌멩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늘도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몸이 붕 떠올랐다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커다란 바위에 부딪쳐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굴러가던 돌멩이는 그만 굵은 파도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짭짤한 바닷물이 몸속으로 짜릿짜릿 파고들었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날 때마다 돌멩이 눈앞이 가물거리고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러나 들풀과 나무들은 돌멩이가 없어진 줄도 몰랐습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속으로 삭히면서 키운 꽃눈과 잎눈들이 다칠까 봐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바람은 동쪽 바다가 희붐해지자 긴 꼬리를 끌며 멀리 사라졌습니다. 머잖아 해가 떴습니다. 밤새 바람을 붙들고 뛰어다니던 파도는 누워서 햇살에 몸을 말렸습니다. 비바람이 짓밟고 지나간 언덕 위에도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이며 잎이 찢어진 풀포기들이 햇살을 붙들고 일어났습니다.
“응, 돌멩이가 어디 갔지?”
“아∼, 무너졌어!”
겨우 정신을 차린 풀과 나무들의 눈길이 돌멩이를 찾아 몽돌밭으로 향했습니다.
“저기 , 저기를 봐!”
바다를 항해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가 소리쳤습니다.
“아, 기어이 저렇게 되었구나!”
상처투성이가 된 돌멩이는 하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굴러다녔습니다. 살점도 자꾸 떨어졌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돌멩이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는 들풀과 나무들의 가슴은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한편 몽돌밭에서 밤새도록 파도에 시달린 돌멩이는 겨우 눈을 떴습니다. 잘게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시려 옵니다.
“야호, 나도 이제 여기서 살게 되었구나!”
돌멩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싸한 갯내음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러나 돌멩이의 기쁨도 잠시 뿐, 하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고 껍질이 벗겨졌습니다. 짭짤한 바닷물이 몸을 적실 때마다 따갑고 아렸습니다. 쉴 새 없이 쓸고 지나가는 파도 때문에 숨 한번 돌릴 틈도 없었습니다. 이 몽돌이 밀면 저 몽돌이 들이받고, 앞에서 때리면 뒤에서 걷어차는 바람에 돌멩이의 몸은 성한 데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습니다. 돌멩이에게는 이제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었습니다. 가물거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그때마다 딱딱한 몽돌에 부딪쳐 별이 반짝이고 하늘이 빙빙 돌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돌멩이의 몸은 자꾸만 작아졌습니다. 모서리가 깎여나간 돌멩이한테서 옛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지냈을까요. 젓가락 만하던 소나무들이 고목이 되고, 들풀들도 셀 수 없이 자리바꿈을 하는 동안 돌멩이의 몸은 깎이고 깎여 주먹만큼 작아졌습니다. 햇살을 받아 온 몸이 반짝였습니다.
“허허, 이제 저 돌멩이도 몽돌이 다 되었구나!”
“그렇게도 몽돌이 되고 싶어 하더니 잘 됐어!”
“그만큼 고생도 했잖아.”
“어쨌든 소원을 이뤘으니 참 잘된 일이야.” 옛 친구들의 걱정 속에서도 몽돌이 된 돌멩이는 몸만들기에 하루하루가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