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봄 날에
이호석
칼럼위원
엊그제 내린 비로 텃밭의 시금치와 상치가 파릇파릇 생기가 돌며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집 뒤 골에 있는 하얀 매화꽃이 벌써 봄의 향연을 시작한다. 화단엔 작약 봉오리가 아라비아 궁궐 지붕 모습처럼 뾰족뾰족 솟아나고, 바닥엔 꽃인지 잡초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며 나의 눈치를 보고 있다.
따스한 봄볕 싱그러운 봄바람이 나를 불러낸다. 집 옆 양지바른 야산, 어느 문중 선산을 지난다. 누렇게 마른 잔디 속에 연두빛 여린 새싹들이 마치 엄마 품속에 안겨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젖먹이처럼 수줍게 내밀고 있다. 여러 기의 묘지가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옹기종기 정겹게 누워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가 차례로 누워, 봄 이불로 갈아 덮으며, 지난 겨울 보낸 얘기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묘 앞의 문패도 자식들의 부(富)에 따라 제각각이다. 봉(峯)만 덩그러니 외롭게 있는 묘지, 상석만 있는 묘지, 비석에 갓까지 쓰고 있는 묘지가 있는가 하면, 묘지 안의 망자를 지켜주는 망두까지 서 있는 묘지도 있다. 이승에서 빈부 차별받으며 살아간 영혼들이 저승에서 또 차별된 문패를 보면서 서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산소 옆을 지나면서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려본다. 우리 집 가까이 있는 이 산소는 필자가 어릴 적 운동장이기도 하고, 휴식처이기도 하였다. 산소의 이불도 철 따라 바뀌었다. 봄이면 연두색, 여름이면 초록색 이불, 가을이면 갈색, 겨울이면 노란 잔디 이불로 갈아 덮었다. 봄여름이면 깨끗하고 청초한 그 이불에 소가 풀을 뜯으며 똥오줌을 싸 더럽히기도 하였고, 겨울이면 망나니 같은 아이들이 짧은 하루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누렇게 단풍든 잔디를 사정없이 짓밟으며 뛰놀았다.
산소를 지나 작은 못(池) 가를 지난다. 못이, 새로 나는 연약한 수초와 그 속의 개구리 알, 작은 물고기 등 한 아름 봄을 안고 따뜻한 봄볕에 하품하며 졸고 있다. 잠이 깰까 봐 살며시 못 둑을 걷는다. 연한 하늘색 쪽빛 물속에는 붕어 새끼가 떼를 지어 소풍을 간다. 나의 발소리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나 보다. 우르르 물속으로 몸을 숨긴다. 졸고 있던 못이 후다닥 놀라 함지박 같은 눈을 껌벅이며 붕어 새끼들을 끌어안는다.
못 가 야산에는 진달래가 수줍은 듯 봉오리를 내밀고, 양지쪽 논밭 둑에는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봄볕에 얼굴이 그을릴까 봐 모자와 수건으로 동여매고 쑥과 함께 봄을 캐고 있다. 된장을 풀어 끓인 제철 쑥국과 쑥 털털이 떡은 정말 봄철의 별미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런데 쑥을 캐는 풍경이 세월 따라 많이도 변했다. 예전에는 발랄한 댕기 머리 아가씨들이 온 들판을 누볐는데, 지금은 모두 나이 많은 아주머니 할머니들이다. 농촌의 봄맞이에도 고령화가 실감난다.
못 둑을 지나 황강 가로 나갔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가슴 가득 파고든다. 강가의 수양버들은 연두빛을 띠고 버들강아지들이 토실토실 살이 찐다. 어릴 적 버들피리 불며 버들강아지 따먹던 옛 시절의 추억이 흘러가는 강물 따라 함께 떠내려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풍모를 자랑하며 강을 주름잡던 하얀 고니, 청둥오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따뜻한 날씨를 마다하고 추운 곳만 찾아다니며, 발이 빨갛게 어는 철새들이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철새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이제 곧 온 산야에 꽃이 만발하여 화려한 봄의 전속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 오늘 같은 싱그러운 초봄쯤은 까맣게 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