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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에서 불기 시작하는 고운(최치원) 바람(2) – 김정대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장

-고운 최치원 선생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대회를 중심으로-

김정대(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장)교수의 개회사
“5월은 가야산 홍류동 길을 걸으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이번 행사 초대장의 초대사 첫 문장입니다. 이 좋은 계절에 충절의 고장 합천에서,합천이 자랑하는 가야산과 고운 최치원 선생을 주제로 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열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가야산이 품은 고운 최치원의 인문학적 가치’라는 큰 주제에 걸맞은 의미 있는 발표와 토론이 풍성하게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운 선생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는 그 분의 특출한 능력입니다. 열여덟 살, 젊디젊은 나이에 당나라 과거시험에 급제한 일, 당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며 <격황소서(擊黃巢書)>로 천하에 문명을 떨친 일,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추앙받게 되는 계기가 된 <계원필경(桂苑筆耕)>을 지은 일, 조국 신라에 대해 개혁정치의 밑그림을 그린 일, 유.불.도(儒佛道) 삼교에 두루 밝았던 점 등등은 고운 선생의 비상한 능력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저는 이것을 더 높이 칩니다만, 그분의 올곧고도 숭고한 ‘정신’입니다. 조국 신라를 위해 당나라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일, 난공불락 기득권 세력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린 일, 그토록 꿈꾸었던 개혁정치가 불가능 함을 알고는, 미련없이 벼슬을 버린 일, 벼슬을 버리고 전국 명승을 돌 때도 곳곳에서 제자를 키운 일, 끝내 조국 신라를 잊지 못한 일 등등은 그분의 정신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능력과 이런 정신이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는 곳이 바로 합천이고 가야산이고 해인사라서 오늘 국제 학술회의는 더욱 의미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문준희 합천군수님, 석만진 합천군의회 의장님을 비롯한 합천군과 합천군의회 관계자 여러분의 우호적인 협조에 깊이 감사합니다.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이자 고운 국제교류사업회 이사장이신 최효석님이 이 의미있는 학술회의를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에서 주관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써 주신 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을 포함해 국내 저명 연구자를 발표의 장으로 이끌어 주신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위원장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발표와 토론으로써 이번 학술회의를 크게 빛내 주실 최영성 교수님,이빈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장님,김성한 교수님, 노성미 교수님,장성진 교수님, 안동준 교수님,한정호 교수님, 양평 최치원 기념관 관리 주관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보냅니다.
저희 경남대학교 고운학 연구소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재 조명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연구소입니다. 오늘 학술대회 개최를 새로운 출발점의 하나로 삼고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국제학술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빌며 이것으로 개회사에 가름합니다. 고맙습니다.

/편집: 하재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