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조선의 꽃
윤행원
수필가/시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워낙 방대해서 우선 주눅이 든다. 한문으로 된 원전(原典)은 물론, 번역본조차도 손에 잡게 되면 힘겨워한다. 조성원 선생이 해설한 열하일기는 현대적인 에세이 영역으로 끌어들여 흥미 있게 해설을 해서 우선 재미가 있다. 그는 열하일기는 여행기이면서 여행기 이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사유(思惟)의 진폭이 크고, 깊고, 높으며 촌철살인의 글 솜씨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1780년(정조4년)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의 만수절(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使節團)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 온 일을 적은 여행기이다. 특히 북경 사신행(使臣行)을 하면서 적은 어느 여행기보다도 백미적인 위치를 점하는 책이라고 한다.
열하일기는 ‘문학의 보고’ 라고 말한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한국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사람(김택영)은 열하일기를 가리켜 조선 500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고전문학가 고미숙)은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감탄을 한다. 다양한 문체로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문장력을 구사한 박지원에게 쏟아내는 박수소리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좋은 문장을 연마하기 위해선 반드시 열하일기를 읽으라고 권한다.
열하일기를 가리켜 조선 500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이라 치켜세우기도 …
또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감탄한다
저자 조성원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연암의 청년기는 암담했다. 병조참판이었던 조부는 사도세자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파직 당하게 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평생을 살았고 조부 역시 당쟁의 희생양이 되길 원치 않았기에 천재라며 영특한 아이로 소문난 박지원을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다. 연암 박지원은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전주 이씨 집안의 딸과 혼인을 한 이후에야 그의 영민함과 재주를 알아본 장인 이보천의 지도로 본격적인 글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장인의 동생이자 처숙부인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깊이 있는 학문적 가르침을 받았으며 처남 이재성과 함께 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과 관련된 책을 두루 섭렵했다.
그 당시 중화의 선비들로서 학문과 문장이 있는 사람들은 연암을 한 번 보고는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큰 키에 큰 얼굴로 눈썹이 수려하고 호탕한 이야기와 웅장한 변론으로 주위를 압도했다. 연암은 술을 좋아했고 좋은 친구가 많았다. 그 당시 대 문장가(文章家) 박제가, 홍대용, 유득공, 이덕무 등과 친했다. 홀연히 달밤에 술을 청하고 지쳐 꼬꾸라질 판국에도 술을 마시고서야 비로소 잠이 드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연암 선생이었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현대의 수필에 대해서도 그대로 들어맞는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이고 으뜸가는 문학적 보배라 할 것이다. 우리는 연암의 여행기를 통해서 230년 전의 중국과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자상하게 알게 된다. 웅혼(雄渾)한 문장력에다 면밀한 서술이 놀랍다.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풍경을 자세하게도 설명한다. 주위 풍경묘사가 섬세하고 일품이다. 연암 특유의 박학다식과 번뜩이는 천재성을 알게 된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열하일기의 현대적인 해설판이다. 저자 나름대로의 글담으로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듯 담담 술술 부드럽게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저자는 관련된 책을 모조리 섭렵하고 때론 중국현지로 직접 찾아가서 열하일기의 여정을 답사하고, 대조하고, 조사했다. 이렇게도 열성과 정성을 쏟아 대단한 책을 만들었다.
열하일기는 26권 10책 연암집(燕巖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1~7권은 여행경로를 기록했고, 8~26권은 보고들은 것들을 한 가지씩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본고는 각론의 일부를 발췌하였으며 전체를 다 기술하지는 않았다. 읽다보면 사물(事物)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의 입담서린 글이 종횡무진 달린다. 무려 660페이지나 되는 방대하고 두꺼운 책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나의 소감을 말하라면 조성원 작가도 어지간히 연암을 닮아간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겨룬다고나 할까? 사자후처럼 쏟아내는 아름다운 언변과 박학다식하고 지성이 명석한 두뇌회전을 보면 감히 용호상박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사람이 모두 필치가 유려하고 상황파악이 적확(的確)하다. 과연 글의 마술사다. 누가 말했던가. 조선에서 연암이후의 문장가는 나오지 않았다고. 그런 사람의 글을 해설하고 풀어 쓴 조성원 작가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