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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28)> 여근곡(女根谷)과 나발(喇叭)등, 음양의 조화를 꿈꾸다

천왕산 줄기를 타고 세 개의 산등성이 뻗었는데 이중 가운데 등성이 나발등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여근(女根)과 남근(男根)에 관련된 상징물들이 산재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이 만물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우주는 물론 우리의 생활주변에서도 음양의 조화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음과 양이 화합하려는 끌림이 우주만물을 생성했듯이, 우리 조상들은 음양의 원리에서 다산(多産)과 사회적 안정을 찾고자 했다.
초계향교는 지금은 교촌(校村) 마을에 있지만 원래는 청계산 아래 원당(元堂) 마을에 있었다. 교촌과 원당의 한자어가 둘 다 향교와 관련된 말이다. 원당 마을에 있었던 향교는 임진왜란 후 낡고 허물어져 1647년 인조 25에 단봉산(丹鳳山) 기슭인 교촌으로 옮겨와 새로 지었다. 단봉산은 그 봉우리가 연꽃 같다고 하여 연화봉(蓮花峰)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익히 알려진 이름은 처녀봉인데 처녀가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그리 부른다. 그리고 향교는 여인의 음부(陰部)에 해당하는 여근곡에다 이전했던 것이다. 옛 초계 사람들은 그런 여근곡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여근곡의 정반대 편인 초계(지금은 적중면) 정토(淨土)에서 남근(男根)에 해당하는 나발 모양의 오름을 찾아 이를 나발등이라 했다. 이 나발등은 600미터가 넘는 천왕산 줄기가 초계 들판으로 내려 왔는데, 단봉산의 형상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가운데는 끝이 뭉툭하고 길쭉하게 생긴 산등성이가 나발같이 생겼다 하여 나발등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여근곡과 나발등, 연화와 정토는 비록 세속적이지만 우리 조상들의 이상향을 보여준다. 당시 초계 선인(先人)들은 이와 같은 조화를 통해 다산과 이 땅을 지킬 인물들의 탄생을 기원하며 부처의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꿈꾸었다.
초계군(지금은 초계면)의 읍내는 북쪽은 단봉산을 위주로 200m가량의 낮은 산들이 있으며, 동과 서로 이어져 남으로 갈수록 600m이상의 산들로 둘려 쌓여 있는데, 그 정점이 천왕산이다. 그런데 서(西)로는 합천을 잇는 택정재에, 동으로는 창녕을 잇는 송림재에 길이 나면서 음양의 조화가 끊겨 초계에는 큰 인물들이 장수(長壽)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단봉산에 둘려 쌓인 교촌 등의 마을에는 음기가 많아 여인들이 장수하는데 반해 남정들은 단명(短命)한다 하고, 대신 천왕산 줄기들인 고산(高山) 아래 있는 정토 등의 마을에는 남정들 보다 여인들이 단명 한다고 한다.
요즘 세대들에겐 음양에 대한 얘기가 미신 같은 얘기로 드릴지 모르나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 관계를 음과 양의 조화만큼 명료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선보용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