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운잡기| 시운(時運)과 천명(天命) – 권해조 서울향우
어느새 또 한해가 지나간다. 2019년 기해년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유난히 시련의 한해였다. 대내적으로는 조국(曺國)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많은 국력이 소모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주변 4강국의 외세에 휩싸인 시련의 한해였다. 이러한 한해를 보내면서 중국 북송(北宋)때 강직하고 후덕했던 명재상인 여몽정(呂蒙正: 946-1011)이 「파요부(破窯賦)」에서 남긴 아래와 같은 ‘시운(時運)과 천명(天命)’이란 글을 음미해 본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은 아침저녁(朝夕)에 있을 화(禍)와 복(福)을 알지 못한다. 지네(蜈蚣)는 발이 많지만 달리는 것은 뱀(蛇)을 따르지 못하고, 닭(鷄)은 날개가 크나 나는 것은 새(鳥)를 따르지 못한다.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으나 사람이 타지 않으면 스스로 가지 못하며, 사람은 구름을 능가하는 높은 뜻(志)이 있어도 운(運)이 따르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문장(文章)이 세상을 덮었던 공자(孔子)도 일찍이 진(陳)나라 땅에서 곤욕을 당하였고, 무략(武略)이 뛰어난 강태공(姜太公)도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드리우며 세월을 보냈다. 도척(盜跖)이 장수(長壽)하였으나 선량한 사람이 아니며, 안회(安回)는 단명(短命)하였으나 흉악한 사람이 아니다. 요순(堯舜)은 지극한 성인(聖人)이나 불초한 자식을 낳았다. 장량(張良)도 원래는 한미한 선비였고, 소하(蕭何)는 일찍이 작은 고을의 현리(縣吏)였다. 안자(晏子)는 키가 오척(五尺)미만이나 제(齊)나라 수상(首相)이 되었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초려(草廬)에서 은거(隱居)하였으나 능히 촉한(蜀漢)의 군사(軍師)가 되었으며, 한신(韓信)은 닭을 잡을 힘도 없었으나 한(漢)나라의 대장(大將)이 되었다. 풍당(馮唐)은 나라를 편안케 할 경륜이 있었으나 늙음에 이르도록 그 자리에 등용되지 못하였고, 이광(李廣)은 호랑이를 쏠 수 있는 위력(威力)이 있었으나 종신토록 봉후(封候)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다. 초왕(楚王)은 비록 영웅이나 오강(烏江)에서 자결함을 면치 못하였고, 한왕(漢王)은 비록 약하나 산하만리(山河萬里)를 얻어 황제가 되었다.
경륜과 학식이 가득하여도 백발이 되도록 급제(及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능과 학문이 성기고 얕아도 소년(少年)에 등과(登科)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먼저는 부유하였으나 뒤에 가난한 사람도 있고, 먼저는 가난 하였으나 뒤에는 부유한 사람도 있다. 교룡(蛟龍)이 때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와 새우들이 노는 물속에서 몸을 잠기며, 군자(君子)도 시운(時運)을 잃게 되면 소인(小人)의 아래에서 몸을 굽힌다. 하늘도 때를 얻지 못하면 해와 달이 광채가 없으며, 땅도 때를 얻지 못하면 초목이 자라지 못한다. 물도 때를 얻지 못하면 유리한 운이라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도 때를 얻지 못하면 유리한 운이라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옛날에 내가 낙양(洛陽)에 있을 때 하루는 승원(僧院)의 차가운 방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는데 홑겹의 베옷으로 몸을 가릴 수 밖에 없었고 멀건 죽으로 배고품을 이겨 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윗사람들은 나의 무능함을 미워했고 아랫사람들도 나를 위압하였다. 사람들은 나를 천(賤)하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이는 천한 것이 아니고, 단지 나에게 주어진 시운(時運)이며 또한 천명(天命)일 뿐이라고 했다. 그 뒤에 나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극품(極品)에 이르러 지위가 삼공(三公)의 반열에 올랐다. 직분은 만조백관(滿朝白官)을 통솔하고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징벌하는 권한을 잡았으며, 밖으로 나가면 채찍을 든 장사(壯士)들이 호위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미인이 시중을 들어준다. 입는 것을 생각하면 능라금단(綾羅錦緞)이 쌓여있고, 먹을 것을 생각하면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하다.
이때 윗사람은 나를 총애하고, 아랫사람은 나를 옹호한다. 사람들은 다 우러러 사모하며 나를 귀(貴)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운(時運)이며 또한 천명(天命)일 뿐이다. 대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귀(富貴)만을 받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빈천(貧賤)함을 업신여기는 것도 또한 옳지 못하다, 이는 천지(天地)가 순환(循環)하며 마치면 다시 시작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 내용은 1,000여 년 전 중국 송나라 여몽정이 남긴 글로써, 오늘날에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파요부(破窯賦)란 여몽정이 젊은 날 곤궁한 시간을 보낼 때 사용하지 않은 기왓가마(瓦窯)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나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후에 급제하였으나 자기가 남보다 잘나서 출세한 것이 아니고 때와 운명이 오늘의 자기를 만들어 주었다며, 장자(莊子)의 안명무위(安命無爲)처럼 겸허한 표현으로 서술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시운과 천명의 덕분이라 했지만 실은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 숨어 있었다. 자칫 노력은 하지 않고 시운과 천명에만 맡기면 새로운 개척정신과 발전성이 없이 초라한 생을 마치게 되는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을지 두렵다. 밝아오는 2020년 경자년에는 모든 합천군민이 새로운 목표와 꿈을 간직하고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