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월의 단상(斷想) – 이호석 논설위원
정월 하면 보통 음력 새해 첫 달을 의미한다. 1950~60년대는 나라의 경제가 매우 어려웠고, 당시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할 만큼 농촌 인구가 전 국민의 6,70%에 달하고 농업을 중히 여겼지만, 농촌의 생활은 더없이 어려웠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섣달(음12월)이 되면 음력 새해 정월을 맞이할 차비로 전국이 분산해지고, 특히 농촌 지역은 벌써 명절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들뜨게 된다.
섣달은 농부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새까맣게 그을려가며 그 힘든 농사일을 끝낸 시기이다. 농사철에는 어린아이들도 소를 먹이고 소꼴을 베야 할 정도로 남녀노소 모두가 바쁘고 고되다. 그러다가 동짓달에 들어서면 그런 고된 일은 거의 끝이 나지만, 그 다음으로 힘든 일들이 기다린다. 초가지붕도 새로 이어야 하고, 겨울철 찬거리 원류인 메주 끓이기와 김장도 해야 한다. 지붕을 이는 일은 주로 남정네들의 몫으로 이웃사촌들과 품앗이로 서로 도와 가며 한다. 며칠간에 걸쳐 새 짚으로 마름을 엮어 모은 다음, 묵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마름으로 갈아 덮는다. 며칠 사이에 온 마을의 초가집이 노란 새 옷으로 깔끔하게 갈아입은 풍경은 아름답고 정겹기까지 하다. 이 일이 끝날 때쯤이면 아낙네들은 메주를 끓이기 시작하고 사랑방이나 처마 밑 서까래에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또 이 무렵 추위에 서둘러 하는 김장도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다. 농가에서는 겨울철 농한기가 되어도 항상 잡다한 일이 기다린다. 겨우내 필요한 땔감도 해야 하고, 소먹이 여물도 준비해야 하고 또 매일 아침저녁 쇠죽도 끓여줘야 한다.
그래도 이때는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집집이 나름대로 쌓여 있고, 고된 농사일도 끝난 때라, 연중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하고 넉넉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또 새해를 맞이하고 조상을 섬기며, 온 가족·친지가 함께 모이는 설 명절과 대보름이 있는 정월달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조상 대대로 농사일로 고달픈 농민들이지만, 그래도 매년 새해를 맞을 때는 나름대로 작은 희망을 품는다. 자녀들이 한해 더 자랐으니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상급 학교 진학도 해야 하고, 또 새해에는 송아지, 돼지 새끼도 몇 마리 더 사서 기르고 싶고,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논 밭떼기에 무엇을 심어 가꿀 것인지 등을 생각하면서, 지난해보다는 뭔가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과 기대를 한다. 이들의 희망은 벼락부자가 되어가 큰 출세를 바라는 그런 거창한 꿈이 아니다. 올해 농사가 풍년이 들어 생활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초가지붕만큼이나 평화롭고 소박한 희망들이다.
정월 초하루(설)가 임박해지면 집 안 청소와 제사음식 준비로 어른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남이 놀 때 같이 놀려면 정월 한 달 내 때야 할 나무도 부지런히 해서 쌓아 둬야 하고, 소 마구간이며 돼지우리도 깨끗이 치워 놓아야 하고, 또 그동안 소먹이 여물도 수북이 썰어 놓아야 한다. 정월 한 달 마음 편히 쉬기 위한 준비로 겨울의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이때가 되면 마을 공터에서는 쌀과 강냉이를 튀기는 뻥튀기 소리가 수시로 조용한 농촌 마을의 고요를 뒤흔들고, 아이들도 등달아 신이난다. 또 평소 구멍 난 양말과 헌 옷을 기워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설날이 어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새 신과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고, 또 얼마간의 귀한 세뱃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 이삼일 전이면 어른들이 마을 주변 도랑에 모여 제사에 쓸 돼지를 잡는다. 보통 큼직한 놈 한 마리를 잡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잔인하다. 살아있는 돼지의 네발을 묶은 다음 식칼로 그대로 목을 찔렀다. 돼지는 그렁그렁하며 잠시 고통 속에 피를 쏟다가 금방 숨이 끓어진다. 그러면 옆에서 준비한 펄펄 끓는 물로 티를 한 다음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네 다리를 중심으로 고기를 가른다.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잔인한 모습이다. 돼지를 잡는 날이면 우리들은 그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오줌통이 나오면 거기 바람을 불어넣어 축구공 대용으로 차며 놀기도 한다.
또 정월 하면 소나무에 맨 그네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 마을은 설날 오후가 되면 꼭 그네를 맸다. 마을 바로 옆에 묘소 몇 기가 있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주위로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매년 그중에서 가장 높고 튼튼한 소나무에 그네를 맨다. 오전에 집에서 차례와 세배를 마치고 오후가 되면 자연스레 마을 청년들과 초·중학생 또래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짚 몇 단씩을 가지고 이곳으로 모인다. 짚이 어느 정도 모이면 힘센 청년들이 두꺼운 그넷줄을 땋기 시작하고, 한참이 걸려 그넷줄이 거의 다 만들어지면 먼저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로 양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새로 만든 그넷줄의 강도를 측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튼튼한 그넷줄로 확인이 되면 그네를 매는데, 그 높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마을에서 20대 후반의 강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강씨 아저씨가 그넷줄 끝을 허리춤에 매달고 다람쥐처럼 올라가는 모습에 밑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탄성을 지르며 손뼉을 친다.
그렇게 맨 그네는 며칠간 마을의 처녀·총각들이나 어른들이 번째로 멋과 기량을 뽐내며 신나게 탄다. 그러다가 정월 대보름쯤 되면 그넷줄이 끓어졌고, 우리들은 며칠씩 끓어진 그넷줄에 매달려 놀기도 했다. 또 대보름날에는 마을 앞 아담한 동산에 올라가 작은 달집을 만들어 태우며 다리미와 깡통 등에 콩을 볶아 먹는 재미도 솔솔 했다. 이 무렵이 되면 마을 어른들이 모여 꽹과리를 치며, 집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면서 설음식도 대접받고 돈을 조금씩 받아 모으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도 별나다. 어떤 사람은 거지같은 모습으로, 또 어떤 사람은 다 떨어진 군복에 목총을 메고 깨어진 철모까지 쓰고 군인 흉내를 내는 등, 재미있는 모습에 우리들은 하루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다녔다.
이렇게 즐거운 농촌의 정월은 금방 지나가고. 곧 바람이 많이 분다는 2월이 오고, 보리가 파릇파릇한 들녘이 농부들의 마음을 바쁘게 한다. 이때 농부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말로 ‘2월 초하루 밥을 먹고 나면 썩은 새끼에 목을 맨다.’는 속담이 있다. 정월달의 풍속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 있는 달임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