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운잡기|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 권해조 논설위원
허남정의 일본열도 도보종단 탐방기를 읽고
얼마 전 동북아 공동연구재단 허남정 연구위원이 최근에 발간한 책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를 읽었다. 이 책은 인생탐험가 허남정 박사가 한일관계 40년을 맞은 지난해 4월1일부터 5월 31일까지 61일간 일본 남단 규수 가고시마로부터 북부 홋카이도 삿포로까지 6,400km의 여정을 완주하면서 일본의 문화와 의식구조를 탐방한 결과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단 배낭을 메고 일본 4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4개 지역 1,111km를 도보종단을 하는 동안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면서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모습과 애환을 보면서 일본 전문가로 살며 쌓아온 자신의 지식과 통찰력으로 쓴 책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번 일본종단여행의 구비조건으로서 2018년 산티아고 800km를 걸은 경험과 함께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 구사능력, 그동안 구축한 일본거주 지인들과 맺은 끈끈한 인맥, 과거 200여 차례의 일본 출장경험, 그리고 일본문화에 대한 식견 등을 들었다.
그는 지역탐방을 하면서 일본인과 대화를 통해서 얻은 여러 문화의 특성을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였다. 일본인은 죽음과 함께 살며, 묘지도 주택한가운데 있다. 일본에는 사찰과 신사가 압도적이지만 여러 종교가 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 사이좋게 공존한다. 일본인은 ‘근검절약’이 부자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일본에는 공짜가 없다, 식당에서도 ‘더치페이’가 자연스럽다. 일본인은 1+1은 2라고 고지식하게 믿지만 한국인에게는 3도 되고 10도 될 수 있다. 일본인은 한우물만 판다. 그래서 노벨상을 과학 분야에서만 23개를 받았다. 연간 1인 독서량도 한국은 8.3권인데 일본은 40권이다. 일본인은 약속을 잘 지키고, 교통질서, 줄서기 등 법규를 잘 지키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는 주변국의 야욕과 탐욕 때문만이 아니고, 주변국에 대한 몰이해와 내부분열과 갈등증폭의 요인이 불행한 역사를 반복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일관계의 악화는 양국의 역사와 민족감정이 연계된 국민의식 저변에 뿌리 깊은 ‘반일(反日), 혐한(嫌韓)’ 감정이 부채질을 하고 있으며, 특히 양국의 위정자와 국민들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며, 외교란 상대방이 존재하는 것으로, 국익을 기준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데는 양국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양국정상은 자주 만나야한다. (고)김대중 대통령이 “외교란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면서 1998년 미래지향적인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고, (고)노무현 대통령도 ‘대일 셔틀외교’로 양국 간 관계증진을 한 선례가 있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고) 심수관 도예가가 1974년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일제 식민 지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란 질문에 “여러분이 36년을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해야한다. 일본이 저지른 죄가 크지만 일제의 악행을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한국인 2세 백진훈 참의원이 “양국 간의 갈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상대방이 자신과 같다는 잣대로 재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는 예를 들기도 했다.
저자는 ‘한.일 간의 갈등요인과 해결방안’을 2014년에 출간된 「박태준이 답이다」를 통해 이미 제시한바가 있다. 이번 책에서 대다수 일본인은 한국과 한국 사람을 좋아 하지만 한국정치인은 싫어한다고 하면서, 양국 국민이 서로를 미워할 거라는 생각은 기우(杞憂)이며 양국의 정치권과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성숙한 선진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측면에서 한일관계를 진취적으로 복원시켜 나가야 하며, 자라는 후손들에게도 반일감정을 심어주기보다는 과거 역사를 똑바로 알리고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일양국은 1년에 1천만 명 이상의 국민이 상호방문하고 있으며, 앞으로 100년 후에도 선린우호 관계는 지속되어야 한다. 악화된 양국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민간교류 활성화로 진정한 극일(克日)을 모색하고, 정치권, 경제계, 언론이 적극으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1996년 일본대사관 무관으로 부임 전 6개월간 일본연수를 하면서 일본 JR패스(Japan Rail Pass)로 도쿄에서 오사카, 시코쿠, 규수, 홋카이도를, 비행기로 오키나와까지 두루 답사한 것을 회상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 필자는 주로 일본 주요 군사기지와 규수 백제마을 난고손(南鄕村), 후쿠이 현(福井縣)의 신라 신을 모신 신라신사(新羅神社), 고구려 이주민이 세운 사이타마 현(埼玉縣) 고려진자(高麗神社) 등 일본속의 한국문화 유적지를 중점 방문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일본의 중. 근대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인 와카야마 현(和歌山縣) 고야산(高野山)과 천태종의 본산인 사카모토(坂本)의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 등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저자는 책 후기에서 61일간의 일본열도 도보여행은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에 한일관계의 저해원인과 해결방안을 성찰하고 향후 100년의 한일관계에 바람직한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는 초연결사회로서 그물망같이 얽혀있는 산업 생태계 속에서 한일관계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있다. 일본은 주한미군 후방기지가 있는 곳으로서 우리안보에 불가결한 우방이다. 한일관계 악화로 많은 재일동포와 일본취업 청년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성에 근거한 한일 양자대화와 국익에 따른 타협이 정답이다. 옛말에 “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고 했다. 한일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숙명적인 한일관계, 성신교린(誠信交隣)이 답이다.’ 라며 끝을 맺었다. 이 책을 발간한 저자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 책이 여러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 한일관계 개선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