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결단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 공원석 전 합천중학교장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학자는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상인(商人)적 현실감각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나’ 혼자만 잘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섰으면, 귀찮고 힘들어도 국민을 배불리 먹일 방법을 모색함이 바른길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조 현종 때에 예송(禮訟)논쟁이 있었습니다. 왕이 죽었는데 대비(大妃)가 상복을 1년 입을 것인가? 3년 입을 것인가? 로 다투었습니다. 막말로 대비가 상복을 1년을 입거나 3년을 입는 문제하고, 백성들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중국의 주자(朱子)가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분명히 규정해 놓은 기준도 없습니다. 단지,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서 그 난리를 피웠던 것입니다. 이런 논란을 할 시간에 백성의 배를 채워줄 궁리를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더 큰 발전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한다면, 원망을 넘어서서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 때엔 단순한 복식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임금의 적서(嫡庶)와 정통성문제가 깔려있었고, 군신관계와 정파의 흥망도 걸려 있었습니다. 예법은 핑계였고, 뒤로는 정파 간의 권력투쟁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1년이냐 3년이냐에 따라서 우리가족, 우리파당이 죽느냐, 상대가 죽느냐는 생사가 걸린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도 없고, 타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편의 잘못은 무조건 비호하고 덮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모습이 이를 닮아 가는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되지도 않은 일을 두고서 헐뜯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의 지연(地緣)과 관련해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은 언제인가는 소멸된다는 것을 의식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최근에 합천향우 한분께서 ‘통 큰 합천인’을 바란다는 ‘합천신문’ 기고를 읽었습니다. 이 분의 주장처럼 통 큰 결단과 실천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오직 향수에 젖어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만은 아닙니다. 이는 미래를 위한 계획과 실천에 접목되어야 합니다. 큰 결단과 자기반성으로 과거문제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에 젖은 쓸데없는 고집이랑 버리고, 우리 후손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열어주어야 할 역할을 해야 함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명(召命)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