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백의종군로 안내문 검토 의견

안명영
전 쌍책중 교장 명신고교장

삼가중학교 교문, 쌍백치안센터, 대양면 덕정삼거리 근방에 충무공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일부를 옮기면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이곳 합천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당시 초계지역에 권율 도원수부(權慄 都元帥府)가 위치하게 되었다. 이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있다가 원균(元均) 등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이 충무공이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이곳 권율장군 휘하에 와 47일간을 머물게 되었다. 정유년 4월 4일 한양(서울)을 출발한 이 충무공은 천안과 구례, 단계를 거쳐 동년 6월 2일 우리 고장 삼가에 도착하여 장맛비로 이틀간을 관사에서 머물다가 6월 4일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쌍백, 대양, 율곡을 거쳐 초계 권율 도원수부에 도착하였다. …7월 18일 이곳 합천을 떠났으며, 남은 배(戰船) 겨우 12척과 빈약한 병력으로 막강한 왜군과 대결하여 적선 31척을 침몰시키고 대승을 거두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전투 중에 기록한 진중 일기로 상황에 따라 글씨체가 다르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흘림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최근에 발간된 책일수록 정확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예로써 안내문에 ‘정유년 4월 4일 서울을 출발했다’고 했는데 최근 난중일기 번역에 의하면, 4.1. 신유. 맑음. 옥문을 나왔다(得出圓門). 남대문 밖 윤간의 여종 집에 이르니, 조카 등과 함께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 했다. / 4.2. 임술. 종일 비가 계속 내렸다. 여러 조카들과 이야기 했다. / 4.3. 계해. 맑음.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早登南程). 금오랑 등은 먼저 수원부에 이르렀다. 나는 저물녘 수원에 들어가 경기 체찰사 수하의 이름도 모르는 병사의 집에서 잤다. / 4.4. 갑자. 맑음. 일찍 길을 떠나(早發登程), 진위구로(평택시 진위면 봉남리)를 거쳐 냇가에서 말을 쉬게 했다.
요약하면, 4월 1일 옥문을 나왔고(得出圓門) / 4월 2일 휴식 / 4월 3일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早登南程) / 4월 4일 일찍 길을 떠나(早發登程).
즉 4월 3일에 한양을 출발하였고, 4월 4일은 수원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안내문의 한양 출발 일자 4월 4일을 4월 3일로 정정해야겠다.
‘초계지역에 권율 도원수부(權慄 都元帥府)가 위치하게 되었다’에 대하여,
5.23. 계축. 맑음. 남풍이 세게 불었다. 내일 초계로 가겠다고 고하니 체찰사가 이대백이 모은 쌀 두 섬을 帖紙로 써 주었다. / 6.4. 계해. 흐리다가 맑음. 강을 건너지 않고 곧바로 십리 남짓 가니 원수의 진이 바라보였다(元帥陣望見矣). / 7.23. 임인. 비가 오다 개다 했다. 아침에 노량에서부터 만든 공문을 송대립에게 주어 먼저 元帥府에 보냈다.(先送于元帥府). 이상에서 당시 초계에는 원수부가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남은 배(戰船) 겨우 12척과 빈약한 병력으로 막강한 왜군과 대결’에 대하여, 실제 해전에서 침몰되지 않은 1척을 합류시켜 13척으로 31척을 격파하였다. 이상은 이충무공의 난중일기 중 ‘합천길 백의종군 기간’의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이 충무공 백의종군로 안내판(2003. 6. 합천향토사학회)’의 내용 검토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 자료
△ 교감완역 난중일기, 지은이 이순신, 옮긴이 노승석, 2011.2.17., 민음사
△ 종합교감 난중일기 정본, 지은이 이순신, 교감 노승석, 2015.4.23., 도서출판 여해

1019-3_안명영(백의종군로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