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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과 교육 – 임장섭 전 합천교육장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스승에 대해 정의를 한 한유(韓愈, 768~824년)는 사설(師說)에서 ‘사자, 소이전도수업해혹야(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也)’라 했다.
‘스승은 나아갈 길을(道) 전해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즉 어느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능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함께 필요한 제반 능력을 길러주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스승과 제자사이의 관계를 ‘줄탁동시(啐啄同時)’란 표현만한 게 있을까. ‘줄(啐)’이란 껍질안에 있는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안에서 쪼는 것이며, ‘탁(啄)’이란 밖에서 어미닭이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밖으로 인도하는 보살핌은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스승은 영적인 부모인 것이다.
나는 스승의 날이면 병아리 교사 시절의 일들이 생각난다. 그날은 조례를 통하여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은 후에는 ‘스승의 노래’가 있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로 시작하는 가사를 학생들이 부르는 순간은 사제지간이 따뜻하고 하나 되는 시간이다. 이어서 학생대표들이 전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수업에 들어가면 학급마다 나름대로의 이벤트가 있었다. 지금껏 가장 잊지 못하는 추억이 있다. 폐교가 된 봉산중학교에 근무할 때다. 교실 문을 들어서는데 아카시아 꽃길을 교탁에 이르기까지 만들어둔 것이다. 꽃잎을 따서 꽃길을 만들 때의 마음은 천사가 아니었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학생들이 손 편지를 건네기도 하였다. 요즘 염려하는 촌지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5교시 정도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사제동행의 행사가 있었다. 축구나 배구를 하면서 사제지간에 몸을 부대끼며 숨소리를 교환하는 정(情)이 넘치는 축제였다.
스승의 날이 조용하다. 방송이나 신문에도 스승에 대한 행사나 말들이 없다. 나는 싱겁게도 교육청에 스승의 날에 대한 문의를 해보았다. “스승의 날 행사는 없고 평소와 다름없는 수업을 한다”고 했다. 무언가 허전하고 씁쓸했다. 수년전부터 스승의 날, 학교 휴업을 놓고 양론이 맞서지 않았던가. 일각에서는 휴업이 촌지 수수 등 사회적 문제발생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측에서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스승의 날로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었다. 학부모 일부는 “스승의 날 휴업은 그간의 촌지관행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휴업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스승의 날 자체를 폐지하자는 운동도 있었다. 그들은 ‘스승’이란 용어자체가 구시대적이고, 유교·봉건적이라며,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 1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기도 하였다. 학교 교육이 위기에 처하고 교권(敎權)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스승의 날을 없애면 더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스승의 날은 교사들에게는 올바른 교육에 대한 높은 사명 의식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하고,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배우고 따르며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날이기도 한데 말이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란, 어느 정도의 도덕적 양심이 있을 거라 기대 되는, 사람다운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교육의 힘이 크다. 학생은 스승을 만나 성장하고, 스승은 제자를 만남으로서 결실을 맺는다. 우리나라가 이정도의 번영과 세계에서 문맹률이 제일 낮은 것은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교육의 현장은 날로 거칠어가고, 초·중·고 교실이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고 있다.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수업중인 교사에게 휴대폰으로 욕설문자를 남긴다.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교실붕괴, 교권추락’이 심각한 단계다. 한국교총이 전국의 초·중·고 교사 30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교사의 96.9%가 “수업 중 문제학생들을 발견해도 일부러 회피하고 무시 한다”고 했다. 교사들은 또 “뉴스에 보도되는 교실붕괴 상황은 일부일 뿐이다. 강한 교사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수업 중 잠 깨웠다고, 여교사 코뼈 부러뜨린 중학생도 있었다. 고등학생보다 초등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일이 많아졌다. 일련의 일들은 학생들의 마음이 숙성되지 않아 쉽게 분노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제자가 겁나는 교사가 많다. 지금의 교육현장에선 존사애생(尊師愛生)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입시성적선발 지식중심의 교육으로서 도덕성과 정서함양의 기회를 많이 부여치 못했다. 현대교육체계에서는 정신적인 마음의 행복보다 물질적 풍요를 지향하는 현실이다. 돈 버는 방법이 교육의 내용이다. 마음의 행복에 관한 가르침을 교육에 담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지식을 주입시켜 ’勝者가 善‘이 되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육자가 있는 한 무너져가는 교육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가 교육정책을 발표하고 번복하기를 10여건이나 있었다. 교육의 방향성, 일관성이 없는 정책에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교육의 탈정치화, 이념화도 시급하다.“우리조국이 검찰개혁 해야겠어, 안해야겠어” “너 일베냐” 박정희 서거 40주년에 ’탕탕절‘ 등의 편향된 교육으로, 인헌고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교사 능력 못 믿어 사교육한다는 학부모가 98%나 된다. 교과서 내용20%도 이해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이 6.6%다. 학교선 시험을 안 보니 사설 시험에 몰려간 초등생이 10만명이다. 교육의 문제는 늘 있어왔지만 잘못된 것은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나 조직의 운명은 ’교육‘과 ’사람‘에 달려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과‘ 교육이 희망이며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