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폭2세 피해자 김형률 15주기 추모제

- 국내 최초의 원폭피해자문제 자료관인 합천원폭자료관에서 추모제 열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한국인 피해자 2세로, 원자폭탄으로 인한 유전적 피해자임을 밝히고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의 실상을 알린 고 김형률의 15주기 추모제가 5월 23일 합천원폭자료관과 합천군 공설봉안담에서 열렸다.
고 김형률은 2002년 ‘커밍아웃’을 통해 국내 ‘원폭2세 환우’ 존재를 알리고, 이어서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한국인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초대회장으로서 원폭2세 환우들에 대한 지원이 담긴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 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길 간절히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5년 5월 29일, 만 34세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병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역설하고 핵의 야만을 고발하였으며, 동시에 원폭2세 환우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주장한 반핵평화인권운동가였다.
지난 2016년 5월 19일, 19대 국회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나, 고 김형률이 살아 생전에 그토록 애썼던 2세 등 후손 관련 내용이 피해자 정의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와 인도주의실천의사 협위회가 실태조사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원폭피해자 2,3세도 피폭 영향으로 유전적 질환이 나타나고, 일반인보다 각종 암과 질병에서 3,4~94배 높은 질환율을 보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는 20대 보건복지위에서 상정된 피폭 2세 등을 지원하는 개정안 제출에 미온적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조속히 개정안이 제출되어 평생을 피폭의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살고 계시는 2,3세 등 후손에게 고통이 아닌 희망의 대물림을 선사해야 한다.
특히 이번 15주기 추모제는 유족과 관련 단체의 논의 아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협력으로 지난 5월 12일에 추모비석을 옮긴 장소인 합천원폭자료관 앞에서 열게 되었다. 또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청년들은 고 김형률 15주기를 기억하며 ‘추모의 글 남기기’와 ‘핵무기금지조약서명운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광복 75년, 원폭 75년, 김형률 추모 15주기를 맞이하여 고 김형률 추도식을 마친 이후에, 올해 5월 12일 고 김형률의 납골함을 합천군 공설봉안담도 방문하여 참배하였다.
이날 행사는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합천평화의집 공동주최하고, 김형률추모사업회(회장 강제숙)가 주관하였다. 내빈으로는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김태훈 회장,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이규열 회장, 합천평화의집 이남재 원장,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하재성 관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합천군민주평통 정병균 간사 및 고 김형률 유족분 등 30여명이 모여 조촐한 추모식을 가졌다.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형률은 1970년 히로시마 피폭자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중학교 1학년 때 급성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서 원인 모를 병으로 삶의 고비를 숱하게 겪어야 한다. 중학교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잦은 병치레로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그는 1995년에야 자신이 ‘선청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병이 어머니로부터 유전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 2002년 3월 대구 KYC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최초로 원폭 2세 환우임을 밝히며 원폭2세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5월에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사들에게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호소한다. 2003년 5월 ‘한국원폭2세 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한국원폭피해자와 한국원폭2세환우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결의 하고, 서울의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를 추진한다. 6월에는 서울에서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간담회’ 개최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의한다. 7월에는 부산에서 ‘한일원폭2세환우회 심포지엄’에 참가한다. 8월에는 ‘원폭2세 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기자회견을 가진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진상규명을 골자로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다. 2005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 국가기관 최초로 원폭1세 2세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그 결과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모두 일반인들에 비해 질병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4월에는 원폭피해자 단체 외 시민단체 대표들이 연명하여 국회에 특별법 제정촉구를 골자로 하는 청원서를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을 통해 제출한다. 5월에는 국회에서 ‘원폭폭탄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 방향’ 토론회 참가와 ‘한국인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인권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관한 설명회’ 개최, 일본 도쿄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참여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의에 불참한다. 29일 오전 9시 5분경 부산시 동구 수정동 아파트에서 숨을 거둔다. -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다
일본내무성 정보국 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총피폭자 44만 중 한국인 7만, 한국인 사망자 3만 5천, 생존자 3만 5천.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총피폭자 30만 중 한국인 3만, 한국인사망자 1만 5천, 생존자 1만 5천. 한국인 총피폭사망자 5만, 총피폭생존자 5만이다. 인명 피해자 74만 중 10% 해당되는 10만 명이 한국원폭피해자이며, 한국인의 70~80% 합천사람이다. 특히 히로시마 피해자 중 한국인 99%가 합천사람이다.
/박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