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전고분군, 발굴 현장을 가다
토기유물 가야와 신라 문화 영향
10호분, 12호분 옥구슬 출토 여성 무덤 추정
합천신문사는 22일 합천군과 한빛문화재단연구원의 사전 승인을 받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옥전고분군(사적 제 326호) 유물 발굴 현장을 직접 찾았다. 오후 두 시, 태양은 머리 위를 타는데 발굴현장 연구원들은 순례자들처럼 두 눈은 아래로만 향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최인철 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가까이 있는 11호기 앞에 섰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토기들이었다. 11호기 외에도 무덤의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머리를 남쪽으로 하고 발아래 부장품을 놓아두는 형태다. 일련번호는 유적이 나오는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며, 토기는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토기 중 굽다리접시(고배(高杯))가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이 가야와 신라지역이다. 가야와 신라의 토기양식은 주로 굽다리접시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다리의 형태와 굽구멍의 모습이 서로 잘 대비된다. 가야식 굽다리접시(장각고배:長脚高杯)는 다리가 길고 외형이 곡선형으로 펼쳐지는 나팔모양으로 다리의 굽구멍도 위아래로 나란히 긴네모꼴로 뚫려 있다. 이에 비해 신라의 굽다리접시(단각고배:短脚高杯)는 다리통이 넓고 외형이 직선이며 상대적으로 짧다. 다리에 투창을 뚫을 때는 네모꼴의 넓은 굽구멍이 있다. 또 대가야 토기는 호(壺)들 즉 구연(口軟:접시의 입술)이 직선으로 가다 안쪽으로 내경(內頃:안쪽으로 기울어짐)하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이라면 신라 토기는 구연이 넓어지면서 바라지는 형태를 띤다. 11호기에는 이런 가야식 토기과 신라식 토기가 함께 있었다.
최인철 팀장은 “11호에서 나온 토기를 보면 집단세력이 가야의 영향을 받았고, 5세기 중엽 넘어가면 신라의 양식도 받아들이면서 복합적으로 같이 매장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1호기는 나무덧널무덤으로 관(棺)은 나무로 되어 부식되어 사라졌고 대신 나무관을 잡아주던 꺾쇠가 발굴됐다. 곽(槨)은 돌로 면을 맞추어 쌓은 형태다.
이번 발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무덤은 4호기로 장군 묘로 추정하고 있다. 4호기에서는 1쌍의 금제귀걸이, 6점의 대도(大刀), 비늘갑옷(찰갑),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 말안장(전륜과 후륜), 발걸이(등자), 말띠드리개, 화살통, 유개고배(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등이 발굴됐다. 특히 6점의 대도는 머리 부분에서 동서로 한 점씩, 허리 양쪽으로 두 점씩 나왔다. 이 중 두 점은 세잎문양(삼엽문) 환두대도, 두 점은 문양 없는 환두대도, 한 점은 칼자루가 없는 대도, 나머지 한 점은 세잎문양과 봉황문양 중 세잎문양으로 추측되는 대도이다.
18기의 무덤들을 발굴하면서도 아직까진 유리제품(로만글라쓰)은 발굴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옥전고분군에서 단 한 점이 발굴됐을 만큼 로만글라스는 상위계층 중 최고상위계층에서만 발굴될 수 있는 정말 귀한 유물이다. 대신 10호기와 유난히 좁고 긴 무덤이 특징인 12호기에서 금귀걸이 한 쌍과 두 쌍이 각각 나왔으며, 목걸이로 꿰매어졌을 옥구슬이 3~40개가 발굴되어 여인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하고 있다.
한빛문화재단연구원은 104일 조사 일수 중에 현재 60일 가량 진행한 상태로 1차 평면노출과 내부조사가 60~70% 조사한 상태라고 밝혔다.
최인철 팀장은 “신라나 백제 권역의 문화재조사 발굴 때문에 그 동안 가야 지역에 있는 고분군들이 많은 조명을 받기 힘들었다. 정부에서는 가야문화유산 발굴을 통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설정한 것으로 안다. 이번 발굴의 성과라면 1기의 무덤에서 환두대도 6점이 나왔다는 것과 다른 가야 고분군에 비해 옥전고분군에서는 금제귀걸이가 많이 출토되며 이번에도 4쌍의 금제귀걸이가 나왔다.”고 말했다.
/박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