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어느 거울의 이야기 – 소민호 동화작가
두 사람이 겨우 비켜 갈 만큼 좁은 뒷골목입니다. 일요일엔 내가 등 붙이고 있는 붉은 벽돌담 안에서 찬송가 소리와 신부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신부님 말씀은 긴가민가합니다. 그런데도 일요일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나랑 마주 보는 국숫집 알루미늄 문이 드르륵 열립니다. “하이구야, 오늘은 우째 내 낯이 더 행핀 없노! 거울에 묻은 속 때도 꼭 낯에 핀 저승꽃 같구마!”
쓰레기통에 버려진 나를 주워서 성당 벽돌담에 걸어 준 국숫집 할머니입니다. 골 깊은 주름살 얼굴에 검버섯까지 난 할머니는 내 안에 들어올 것처럼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때 국숫집 안에서 청년이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끔찍이 여기는 늦둥이 아들입니다. 할머니 아들은 내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넥타이를 매만졌습니다. 몸에는 향긋한 냄새도 났습니다.
“아이고야, 우리 아들 참 잘생겼다. 이래 잘 생긴 사람한테 와 일을 안 시키노?” 할머니는 내게 비친 아들을 힐끔 쳐다보며 등을 토닥였습니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아들은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뚜벅뚜벅 걸어서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할머니도 아들이 사라진 골목 끝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골목에 웬 거울이야?”, “허허, 성당 뒷골목에 거울이라… 허허허!” 성당 뒷골목을 처음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습니다. 나도 붉은 벽돌담에 처음 내걸렸을 때는 어색했습니다. 방에서만 지냈던 나는 햇빛을 보자 눈이 부셨습니다. 밝은 세상이 낯설기도 했습니다.
늘 보던 얼굴만 비추다가 낯선 사람들 얼굴이 내 몸에 비칠 때는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 발걸음이 뜸해지는 밤이 되면 더 무섭습니다. 가로등까지 멀리 있어서 골목은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했습니다.
“언자 오나?” 늦은 밤에 할머니 아들이 국숫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아들, 오늘은 우째 댔노?” 할머니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오늘도 틀렸어요. 나를 보고 현장에서 일을 하래요. 먼지 뒤집어쓰고 땀 흘리며 일을 하라네요. 그래서 싫다고 했어요.” 아들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마이 힘드는 일 아이마 한번 해 본다 칼 거 아이가!” 할머니 목소리가 살얼음판을 걷는 발걸음 같았습니다.
“싫어요.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요!” 아들 목소리가 할머니 목소리를 꾹 눌렀습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니는 귀한 몸인 꺼네 귀한 일을 해야지. 암만!” 할머니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난 국숫집 할머니 아들이 문을 열고 옷을 털었습니다. “거울에 때가 많이 묻었구나.” 아들은 성큼 다가서서 맨손으로 나를 쓱 닦았습니다.
나는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할머니 말씀만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눈이 맑았습니다. 겉멋만 없으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나는 아들의 눈을 크게 비췄습니다. 힘들어하는 할머니 모습이 얼핏 보였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더 크게 비췄습니다.
제 눈에 비친 할머니, 힘들어하는 할머니 모습을 본 아들은 흠칫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음, 그렇게 하자!” 할머니 아들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아침 무라.”, “예? 아, 예!” 아들은 할머니 목소리에 서둘러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한참 뒤 할머니와 함께 나온 아들은 양복 대신 청바지와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오야, 괜찮것나?”
할머니 눈에는 기쁨과 걱정이 들락거렸습니다. “아이고, 참 잘댔제. 우째서 전화 한 통에 일자리를 금시 구하노?” 할머니는 아들이 사라진 골목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날부터 국숫집 할머니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달고 다녔습니다. 아들도 아침마다 출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멀리서 가물거리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깔리는 밤이었습니다. “헉, 깜짝이야!”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내 앞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국숫집 아들보다 키가 훨씬 큰 청년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입을 막았습니다. 장갑도 끼었습니다. 빠끔히 내놓은 눈만 반짝였습니다.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가슴을 만지며 앞섶도 다독였습니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청년은 모자챙 아래에 숨은 눈을 내게 비춰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눈이었습니다. 나도 가로등 불빛을 모아 청년의 눈을 밝게 비췄습니다. 그 눈 속엔 섬뜩한 기운이 보였습니다. 오금이 저릴 만큼 서늘했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청년의 눈을 더 크게 비췄습니다. “너는 마음이 따뜻해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게야.” 청년의 눈 속에 나타난 낯선 할머니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국숫집 할머니보다 머리가 더 하얀 할머니였습니다.
“어머니!” 갑자기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마스크를 적셨습니다.
나는 청년의 눈 속에 있는 할머니를 더 크게 비췄습니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웃었습니다. 청년은 장갑을 벗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마스크도 벗었습니다.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말쑥하게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흑흑, 어머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짓은 안 해야 하는데… 잘못했습니다.”
청년은 눈물에 젖은 손을 내밀어 나를 쓰다듬었습니다.
내 몸은 청년의 뜨거운 눈물로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나를 붙들고 울던 청년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둘둘 만 신문지 뭉치였습니다.
청년은 신문지 뭉치를 내 앞에 던져 버린 뒤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나는 그날 밤을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고스란히 새웠습니다. 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국숫집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아이고야, 거울이 와 저래 더럽어졌노?” 할머니는 걸레로 나를 닦았습니다.
“이건 뭐꼬?” 할머니는 청년이 버린 신문지 뭉치를 주워 들고 펼쳤습니다.
“아이고매! 이, 이런 걸 누, 누가?” 할머니는 날카롭고 시퍼런 빛을 펼친 신문지로 덮었습니다.
어제 밤 청년의 눈 속에서 본 서늘한 기운이 다시 내 몸을 감쌌습니다.
“어머니, 뭔데 그럽니까?” 아들이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아이다. 들어가자.” 할머니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 쥐고 아들 등을 떠밀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뒤 다시 나온 국숫집 할머니는 깨끗한 수건으로 나를 닦아 주었습니다. “오늘따라 거울이 새롭네요.” 아들이 내게 얼굴을 슬쩍 비쳐 본 뒤 출근을 했습니다. “아이고, 언자 이 거울도 늙어서 닦아 봐야 표도 안 나구마!” “은혜로운!”
할머니의 넋두리와 찬송가가 뒷골목을 걸어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