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느 아버지들의 서운한 마음 – 이호석 논설위원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서운한 일이 종종 생긴다. 부모와 자식 간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사는 동안 만나는 많은 사람과의 사이에서 수시로 서운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중 아버지와 자식 간은 남달리 오랜 세월, 가깝고 친숙한 관계로 지내면서 대체로 바람도 많고 서운함도 많이 생긴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정환경과 부모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같을 것이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어른)의 말을 잘 들으면서, 건강하고 공부 잘하기를 바랄 것이고, 성인이 되면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바람일 것이다.
그러면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람은 무엇일까? 사랑과 보호를 핑계로 하는 과도한 간섭이나 꾸중은 싫을 것이고, 가족과 남들로부터 존경받고 경제력 있는 아버지가 되어 자식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해주고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도 좀 더 풍족하게 뒷바라지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부자(父子)간 이런 바람이 부분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서로 간 서운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바람과 기대가 있고 그것이 어긋날 때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보편적이다.
여기서 어느 친구와 내가 자식들한테 서운함을 가진 단편적 얘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어느 친구의 이야기이다. 이 친구는 젊을 때는 지역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중년에 들면서 취미생활과 건강을 위해 지역 궁도장에 가입하여 활쏘기를 열심히 수련했다. 오랜 기간 남다른 노력으로 활 쏘는 기량이 동료들보다 월등해졌다. 그 후 수많은 궁도들이 참가하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개인 우승을 몇 차례 하였고, 소속 지역 단체가 우승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하면서 지역의 명예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평소 자기가 전국대회에서 최고의 승자가 되어 만인의 박수를 받으며 수상한 트로피와 우승컵을 곁에 두고 보면서 그때의 영광을 생각하며 큰 자부심을 가진다. 그러나 평소 부인이나 자식들은 자기의 업적이나 상패에 별 관심도 두지 않고 남의 일같이 보아 마음속으로 많이 서운해 한다.
이 친구가 최근 개인 사정이 있어 인근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부인과 아들들이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자기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 상패들을 모두 쓰레기 취급을 하며 버리려고 했다. 평소 가족들의 무관심에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에 이를 버리려고 하니 화가 치밀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큰소리로 성토(聲討)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들놈들은 모두 다 그런가 보다 하며 혼자 쓴웃음을 웃었다. 나는 딸이 없고 아들만 셋이다. 아들들은 어릴 적부터 모두 건강하고 공부도 그런대로 잘해 별걱정 없이 키웠고, 지금은 모두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잘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딸을 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한다. 딸들이 부모에게 쏟는 정이나 모든 걸 살갑게 챙겨준다는 친구들의 자랑을 들을 때마다,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마음이 더해진다. 물론 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모 마음을 행복하게만 해주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솔직히 나는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처지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미약한 힘이나마 항상 내 고장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전 군민이 모인 행사장에서 ‘군민의 장’이란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또 공무원 퇴직 후에는 틈틈이 수필 공부를 하여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수필집 한 권과 향토사 관련 책도 서너 권 출간하였다. 크게 배우지 못한 나로서는 모두가 남다른 노력으로 이룬 결과라고 생각하며 항상 자부심을 가진다.
그리고 내 집은 합천읍 소재지에서 1㎞ 정도 떨어진 농촌 마을,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면적 200여 평 위에 지은 2층 양옥이다. 마당에는 잔디밭에 몇 포기 조경수가 가꾸어져 있고, 앞뒤로 작은 텃밭이 딸려 있다. 앞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가지 채소를 차례로 심어 가꾸고, 뒷밭에는 감나무 두 그루와 살구, 자두, 사과나무 등 유실수가 심어져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앙증맞고 풋풋하게 자라는 채소와 토실토실 커가는 과일들, 그리고 집 옆 산자락에 봄부터 피는 삐삐 꽃과 하얀 찔레꽃, 개망초꽃이 차례로 다른 풍경을 이루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 집터는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형제들이 함께 살던 곳이다. 나는 이곳에 사는 것을 아주 만족해하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어쩌다 한 번씩 다니러 오면, 집 안팎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휭하니 가버리기 일쑤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업적이나 내가 사는 집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자식들의 이러한 태도에 어떨 때는 괘씸한 마음이 들어 언젠가 내 생애 마지막쯤에 이 집을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거나 사회에 환원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며칠 전 마흔일곱 살인 맏아들이 초등학생인 손자를 데리고 와 이틀을 쉬어 갔다. 그런데 난데없이 집에 관심을 보인다. 펜션에 놀러 다녀도 여건이나 환경이 이만한 곳이 별로 없다며 퇴직을 하면 삼 형제 가족이 모여 놀기도 하고 쉬어가는 곳으로 매우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손자에게 생전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이것저것 자랑을 한다. 나는 속으로 ‘이제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의 생활도 보이고, 고향 집도 제대로 보이는 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괘씸한 마음도 있고 아들이 말한 진심의 강도를 알고 싶어 슬쩍 딴전을 피운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이 집을 팔고 읍내 작은 아파트를 구해 편히 살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은 절대 아님)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이 집은 팔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정색을 한다.
나는 큰 자식이 지금이라도 내 삶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고향 집에도 관심을 두는 것 같아 평소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오늘의 제자리에 있기까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뛰었을까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벌써 퇴직 후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 조금은 씁쓸했다.
아들을 보내놓고 지금까지 괘씸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작은 행복감으로 혼자 빙그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