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걸었을 뿐인데- 문경자 수필가
여름의 햇살이 마당에 내려와 부서진다.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으로 된 마당에는 잡초들과 어울려 피어 있는 노란 민들레와 흰 민들레 꽃. 그 속에 벌레들은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며 곡예를 한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탐정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여 동화 같은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시절 자연과 함께 어울려 놀던 달콤한 시간들이 온 전신을 감싼다. 물장구 치던 냇가와 뜨겁던 자갈밭, 대지를 스치는 바람결 이런 것들이 나를 자연과 한 몸이 되게 한다. 이럴 때 나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가만히 있어도 허전하지 않다. 자연의 명상이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그럴 때는 그리움을 실어 달달한 커피향에 취해보고 사랑하는 맘을 갖는 것도 행복하다. 달콤함에 빠져드는 것, 그것은 이기적인 내 안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일이다. 현실사이에 절망대신 긍정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 맛에 녹아서 나의 인생도 나의 삶도 달콤한 휴식이 된다. 그렇다. 때로는 험한 가시덤불 같아도 새벽 이슬을 맞고 피어나는 들꽃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도 푸른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워 향기를 날린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아픔도 감미롭고 잔잔한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나는 새벽시간에 맑은 정신을 집중시켜 고독의 시간에 글을 쓴다. 너무도 조용한 시간의 사이. 하얀 바닥에 자판기를 눌러 글자를 만든다. 수틀에 곱게 수를 놓듯이, 한곳에 집중하면 완전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그 무엇도 나를 방해서는 안된다. 글을 쓸 때 혼자 갇혀 있는 것이다. 혼잡한 생활속에서 벗어나 차단된 공간 그 앞에 앉으면 스스로 무섭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림을 그리듯 미(美)를 그린다. 나의 글을 통하여 내 안의 모든 것을 창조는 자연의 아름답고 고귀함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의 한자한자 쓸 때 마다 그 속에 글의 향기가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아낀다. 거기에는 나의 진솔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2016년 여름에 탄생한 나의 ‘문학당’이 있다. 내가 아직은 이곳에 와서 살지는 않는다. 가족 외에 친척들이 가끔 다녀갔다. 이들은 친척이지만 내 글을 좋아하고, 또 그 글을 쓴 나를 아껴준다. 그들은 친구이자 지극히 사랑스럽다. 나를 문작가라 부른다. 가문의 영광이라 하면서 추켜 세우기도 한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버팀목이다. 내주변에 글을 쓰는 작가들도 나의 ‘문학당’에 오고 싶어한다. 글을 쓰는 집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럽다는 말을 했다. 어느 분이 거창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서 그런 문학당이 생겼으니 시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며 웃었다. 그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산골의 경치와 내 수필집 배경이 된 곳을 궁금해하였다. 밤에는 마루에 걸터앉아 달빛 혹은 별들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라면서 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보는 상상도 했다.
도시의 네온사인 보석집의 찬란한 불빛과는 사뭇 다른 이곳에서 소박한 작품을 쓰고 싶다. 수필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도 도시의 삶보다는 시골의 내 삶이 더 정답게 그려져 있다. 자연의 품안에서 그림처럼 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이끌리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세월의 흐름과 사라져 가는 연민의 정을 더 느끼게 한다. 가족들과 내려가는 날이면 ‘문학당’이라는 이름 하나 걸었을 뿐인데 볼때마다 그 집이 살아 난 듯하다. 이름표를 달아 주니 어디에나 글들이 박혀서 내가 부르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당 한 곁에 있는 큰 바위는 우리집의 명물이다. 유명 작가들의 문학관이 많다. 하지만 나의 작은 공간이 더 좋다. 꿈은 이루어 진다 라는 말처럼 정말 우연하게 짓게 되어 기쁨이 컸다. 그 이름 하나로 만족하며 부자가 된 듯하다.
문학당에 대한 작은 보고를 써본다. 그 해 여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시부모님께서 물려 주신 집을 리모델링하게 되었다. 옛날에 지은 집이지만 허물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공사를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그대로 살려서 공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까래를 살리는 데는 많은 힘이 들었다. 인부들이 도망을 가서 다시 데려와 일을 시켰다고 공사 사장이 알려주었다. 부엌에 창문을 내는 것도 신경을 써주었다. 작가님의 배려를 위해서 북쪽으로 창을 냈다고 했다. 창을 열고 보면 저절로 글 감이 떠오를 만큼 하늘과 산과 강이 훤하게 보였다. 액자 속 그림처럼 얼마나 예쁜지 한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온 몸에 기쁨의 전율이 흘렀다. 이집을 물려 주신 시부모님께 감사드린다.
2017년 1월 19일 송하춘 교수님께서 보내온 문자를 받았다. 언젠가 새로 집 짓고 당 호를 지어 달라고 하셨지요? 그 동안 많이 생각을 해봤는데 ‘문학당’의 이름이 제일 좋겠습니다. 문선생이 워낙 문학을 좋아하고, 성씨가 문씨이고 문씨의 공부하는 집이라! 너무 독특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평범하게 낯익은 제목이면서 학문적인 이름이 어떤지요? 하시면서 보내 주셨어요. 이렇게 해서 ‘문학당’이 탄생되었다.
주인 없는 집에도 해가 뜨고 지고 저녁이면 노을이 마루에 걸터앉아 나 대신 글을 쓰고, 달빛 별빛들이 찾아와 적막한 자연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때로는 고양이도 와서 안부전하고 가겠지. 오늘도 그곳을 생각하며 나는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