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배신의 시대 -문계성 수필가

문계성 수필가

어떤 부류 인간을 가장 부패한 인간이라 할까?
이쪽이 세력을 얻으면, 이쪽에 빌붙어 아첨하며 호사를 누리고, 저쪽이 세력을 얻어 강해지면, 저쪽에 빌붙어 어제까지 온갖 아첨을 떨던 이쪽을 공격하고, 그 댓가로 새로운 호사를 추구하는 자를 말할 것이다.
오직 자기의 입신만을 위하여, 온갖 이론과 사상을 동원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치사한 인간 류형이다.
패륜적 흉계와 배반을 대의大義를 위한 처세인 것처럼 미화된 이야기 책이 삼국지 같은 것인데, 이 책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패권을 쥐기 위하여 대의를 명분으로 온갖 권모술수를 부린다. 그들이 대인배 행세를 하며 내세우는 인의仁義는 패권추구의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너무 심취했던 것일까? 삼국지 이야기 같은 일이 우리 정치에 힁행하지만, 우리는 이런 정치를 증오할 줄 모른다.
광복절 기념 식장에 선 광복회장은 이런 기념사를 했다.
“이승만은 친일 세력이며,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는 친일부역자로서 민족반역자이며, 그가 작곡한 애국가 곡은 외국곡을 모방한 것이므로애국가로 부적절하다. 백선엽 또한 친일부역자로서 현충원에서 파묘해야 한다”
이승만은 이 정권이 정통성을 주장하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통령이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이다. 애국가의 첫 구절이 알바니아인가 하는 나라의 어느 혁명가의 첫 구절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곡의 첫 구절이 비숫하다 하여 그 전부를 모방곡이라 할 수 있을까? 백선엽 장군은 6. 25 때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군인이다.
이 군인이 일본육사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파견된 것은 사실이나, 이 간도특설대가 대한독립군과 전쟁을 벌인 사실이 없다. 만주에 있던 대한 무장 독립군 세력은 1921년 러시아 자유시 사건으로 사실상 궤멸 되었었다. 일본육사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친일분자로 몰아 파묘를 해야 한다면, 대만의 국부인 장개석도 친일분자로서 그 무덤이 파묘 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 광복절 식장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우리나라”라는 문구로 대체되었다. 이날 광복절 식장을 디자인 사람은, 그가 얼마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있는지를 시위적으로 보여주었다
국호國號와 국가國歌를 부정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만든 사람이 못마땅하고, 공산주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사수한 군인이 못마땅하다면, 이 사람은 분명 지금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의 자랑스런 조국은 대체 어디인가? 당신은 왜 그렇게도 부끄럽고 못마땅한 이 대한민국의 광복회 회장이 되었는가?”
그런데 이 양반의 이력을 확인하고는, 실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양반은 박정희와 전두한 정권에서 국회의원도 해먹은 사람이었다. 이 이력을 들먹이자, 그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그때는 먹고 살기 위하여 그렇게 했다”고 했다. 모 방송에 나와서도 이 말을 반복했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아이에게 “너 어제는 그런 짓을 하고, 오늘은 왜 어제를 부인하는 이런 말을 하니?”라고 물으면, 이 아이는 몹시 부끄러워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예부터 있어 온 말에, 사람에게는 부끄러워하는 마음과羞惡之心,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마음是非之心이 있다고 했는데,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이 사단四端 때문이다,
이 광복회장의 말이 내게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거짓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도 부끄러운 짓이 아니다”라는 강변으로 들렸는데, 내가 과민하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인가?
이 양반의 말은, 그 긴 세월 동안 자기의 본심을 숨기고, 자기의 신념과 배치되는 정권을 섬기고, 국회의원 공천을 따내기 위해 그 당에 온갖 아부를 했다는 말인데,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아마 그도 세상의 눈초리를 살폈을 것인데, 대체, 그 본심이 무엇이었을까? 개가 그 뒤집어 쓴 양가죽을 벗어 던지고 본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새 권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 권력에 맞는 새 가면을 뒤집어 쓴 것일까?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이 양반은 먹고 사는 길이, 자기의 본심을 속여가며, 신념이 다른 정권에 아부하며 벼슬하는 길밖에 없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국회의원을 할 정도의 지력을 갖춘 사람이, 꼭 자기 양심을 속이며 호구하는 길을 택해야 했을까?
이 사회에는 신념信念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안락한 삶을 벗어 던지는 지사志士가 많다. 이런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세상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이 붙어 호사를 추구하는 사람과는 질이 다르다.
광복회장은 그런 사람이 해야 하지 않을까? 그가 무슨 마음으로 이 발언을 하였던, 이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이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켜 온 가치와 역사를 뒤집어야 비로소 사회적 성공이 가능한 세상에 되었다는, 매우 서글프고 우려되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던, 가공의 거짓이던 상관이 없다. 다만, 새 정권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으면 정의가 된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의 본심이, 진실의 폭로에 있었던, 세태에 아부하는 비겁에 있었던 상관 없이, 그는 배신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의 우리를 부정하는 배신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는 그 선두 대열에 섰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