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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서원(晦山書院)의 위치에 대한 소고 (2) – 최상호 유림회장

*사우실祠宇室을 사기실沙器室로 고쳐서는 불가不可한 이유事由

  1. 그믐 재는 고지도를 살펴보면 회현晦峴, 망현網峴, 화지현花旨峴으로 지도地圖마다 표기가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그믐 재를 의미한다. 회현晦峴은 그믐 회(晦), 고개 현(峴), 망현網峴은 그물 망(網), 고개 현(峴), 화지현(花旨峴)은 꽃 화(花), 곳 지(旨) 즉 꽃 화(花)자는 꽃은 지면 시들고 시들면 흐려지고 어두워 진다고 어두워질 화(花)자로 쓰였고 곳 지(旨)자는 장소를 가리키므로 어두워지는 곳이므로 모두가 그믐 재를 뜻한다. 지도에 표기된 상기 세 가지의 지명이 모두가 현재 장대將臺에서 외사리外沙里로 넘어 가는 고개인 신작로新作路가 아닌 것은 자명自明하다. 그믐 재는 내사리內沙里 입구 쪽으로 꺾어서 삼가면 지동(枝洞) 부락 쪽과 대병 병목(幷木) 쪽으로 완전하게 꺾여 있으므로, 정확성있는 지도가 아니라도 충분히 해독할 수는 있다.
  2. 사기실沙器室이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는 과문寡聞한 탓인가 모르지만 요즈음 젊은 향토사학鄕土史學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사우실祠宇室에 지표조사地表調査를 하여 가마 유지遺址를 발견發見하고 행정지명行政地名에 외사리外沙里의 沙(사) 자가 사기砂器그릇의 모래 沙(사) 자가 들어 있으니 사우실祠宇室이 사기실砂器室의 잘못된 지명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사기실砂器室의 연원은 조선시대 갑오개혁(1895년)때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행정구역을 만든 것이라고 일제가 말했지만, 실은 1910년 한일합방 후부터 1912년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제 일차로 만든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은 일제가 정리한 자료이며 자연부락의 명칭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자기들의 사관史觀에 맞게, 또는 고유의 뜻에 이반離反되게 상당부분相當部分 개작改作된 것이다. 회산서원은 남명 선생 역사의 일부이니 의도적으로 사우실祠宇室을 사우리(祠宇里)라 하지 않았고, 祠(사) 자를 沙(사) 字로 고쳐 외사리(外沙里)로 하여 남명 선생의 흔적을 지운 것이다. 이때 사우(沙字)가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행정체계가 리里 동洞 단위單位의 행정조직行政組織으로 기록 관리하지 않았고, 자연 부락 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일제가 1910년부터 1912년까지 리里 동명洞名까지 조사하여 한자로 기록함으로서 최초로 현대적 행정체계를 갖추어 주었다. 참고로 조선시대 세종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삼가 토산(世宗地理志 慶尙道 晉州牧 三嘉 土産) 란에 자기소(磁器所)가 현서縣西 감한리甘閑里에 있고 품질은 중품中品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자기소(磁器所)라는 기록은 있으나 사기실(砂器室)이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사우실(祠宇室)에 자기磁器 굽는 가마의 유지遺址가 있었다고 그 유지遺址를 보고 부락 이름을 고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처사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3. 사우실祠宇室에 사는 김찬호(010~9149~6237. 직장 생활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귀향하였음) 씨가 30여 년 전에 논둑 보수작업 중, 비개석(碑蓋石)을 발견하였는데 지나가는 골동품상이 팔라고 하여 당시 5천원을 받았는데, 그 후 또 논에서 큰 빨래돌만 한 비신(碑身)이 발견되어 논둑에 두었는데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없어졌다. 거기에 쓰인 기억되는 글자는 말 마(馬) 자와 아래 하(下) 자는 기억된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는 하마비(下馬碑)가 틀림없고 서원(書院)이 있은 증거(證據)가 될 것이다. 새마을 사업으로 길의 석축(石築)을 쌓을 때 석재(石材)로 쓰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4.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회산서원의 사우祠宇가 있었으므로 사우실祠宇室이라는 지명地名이 생긴 것이라는 전설傳說이 확인確認되었으며, 따라서 회현晦峴은 사우실祠宇室을 넘어가는 긴 고갯길이다. 끝으로 사기실砂器室이라는 이름을 사우실祠宇室 사람이나 인근 부락인 문송文松이나 지동枝洞 하판下板 등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지역민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이게 당신들 동네 이름이요 하면서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가? 합천문화원에서 <합천군 지명사>가 2019년6월에 발간되었는데 여기에도 사우실祠宇室은 없고 사기실沙器室만 있다. 관련 위원들은 남의 동네 이름을 지어 주는 사람들인가?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

추기(追記):
<합천군 지명사>가 2019년6월에 출간되었다.
가회면 외사리(佳會面 外沙里)에 외사外沙 부락部落과 내사內沙 부락部落이 있다. 동 지명사에 보면 가회면佳會面 외사부락外沙部落에 거청지가 있는데 금金부처를 안치安置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 흔적痕迹이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내사부락內沙部落에 사기실沙器室이라는 지명地名이 기록記錄되어 있다. 그러나 외사부락外沙部落의 거청지는 1966년4월30일 국립건설연구소에서 발행한 지도에 내사부락內沙部落(외사리305번지), 속칭 뿔당에 소재하여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고, 또 내사부락內沙部落에는 사기실沙器室 이라는 지명은 본래 없었다. 거청지는 용출지(涌出池)로 수량이나 수질이 좋아 흉년이 없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곡식이 비축되어 있었다. 옛날에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분청사기 파편粉靑沙器 破片이 지금도 밭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필자가 어릴 때 증조모 산소 인근이라 일년에 한 두 번 씩 들렸는데 그 때에는 두 집이 있었는데 흉년만 들면 곡식 도둑이 자주 들어 불안하여 모두 이주하였다고 한다. 문화원은 누락된 지명地名이나 오류誤謬를 각 면 부락별로 재조사再照査하여 이를 바로잡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