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처음처럼 – 교육이야기

공원석
논설위원

우리는 살아가면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 말은 처음에 가진 마음을 뜻하는 ‘처음처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을 필요로 하는데 첫째 초심, 둘째 열심, 셋째 뒷심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을 새기면서 다음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그 마을에서 태어나 혼인하고 70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혼인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노부부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잔치 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깨진 꽃병 하나가 거실탁자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잔치를 돕던 아낙네들이 그 꽃병을 치우려고 했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그 자리에 그냥 두라고 말렸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거실로 나온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혼인한지 벌써 50년이나 지났습니다. 남편과 제가 여태까지 아무 탈 없이 혼인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탁자위의 깨진 꽃병 때문입니다. 51년 전 남편은 제 방에서 저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감격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그만 탁자위의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깨진 꽃병은 그 날의 내가 느낀 감격 바로 그것입니다. 그 감격을 되새기기 위해 꽃병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었습니다.”라고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탁자위로 모아졌습니다. 깨진 꽃병은 햇빛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즐겁고 편안한 시간들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도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속담에 “천석꾼은 걱정이 천 가지이고, 만석꾼은 걱정이 만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의 입장보다는 자기 입장만을 늘 호소합니다. 자기가 남보다 행복하다거나, 지금의 생활에 고마움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나를 지켜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종교에 의탁하는 보상심리를 갖기도 하고, 자살이라는 행위로 극단적 퇴행행동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생각보다 쉽게 풀어질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요즘엔 나이를 불문하고 경제적이거나 정신적 어려움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의 힘으로 갈라서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세계에서 선두(4위)로 꼽힌다고 하니 슬픈 일입니다. 혼인은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의해 세워진 엄숙한 제도입니다. 법조계에선 합의이혼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조치는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권을 넘어선 올바른 강제적 사회규제라고 봅니다. 수가 틀리면 이혼하는 풍조가 다른 일에까지 그 영향이 미칠까봐 두렵습니다. 혼인하던 처음 날로 돌아가 세상의 평화가 가정으로부터 출발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