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예술의 르네상스, 그 주역을 만나다 (19) – 시인 최병태
“당신이 시를 쓰고자한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
최병태 시인은 그의 고백처럼 시와는 거리 먼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에게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일반적인 시인들보다 긴 인내의 과정들이 필요했다. 최 시인은 한양대학교 토목학과를 졸업했고, (주)동아건설 토목엔지니어로 1980년대 지금의 합천댐을 건설할 당시 책임 소장으로 내려왔다 율곡에 눌러 앉았다. 속된 말로 노가다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그때까지 시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의 시 쓰기는 당시 합천에 거주하고 있던(지금은 제주도 서귀포에 계심) 김원욱 시인을 예기치 않게 만나면서인데 그때부터 시에 대한 그의 생각도 시나브로 바뀌어 갔다.
“시를 쓰겠다는 어떠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김원욱 시인의 반우격다짐으로 1992년 『합천문학회』을 창단하는데, 저를 포함해 4인이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듬해에는 11명의 회원들을 모아 창립총회까지 개최했다. 하지만 문학회를 창립하는 데까지 관여한 내가 가만히 있을 수만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은 본능적으로 거짓과 과장이 따를 수 있지만, 글은 오래도록 기록에 남아 처음부터 내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 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의 글이 거짓으로 들통 나게 마련이다’고. 그래서 고해성사한다는 마음으로 시를 써보려 마음먹었다”
최 시인은 오랜 기간 시를 쓰면서도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그가 출발부터 늦은 감도 있었지만 시를 쓴지 29년 만에 《합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하지만 2019년에는 한국문인협회 합천지부 회장을 역임하는가 하면, 한국예총 합천군지회 부지회장도 역임했다. 최 시인은 시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누구나 시인은 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누구든 처음부터 시인이 아니었듯이 당신도 시를 쓰고자 시작한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근 30년 만에 시인으로 등단했듯이 중도에 시를 포기했더라면 사람들이 말하는 시인인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나만이 시인이 아니고 시를 쓰려고 했던 순간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시인이 아니었든가 싶다” 하지만 최 시인은 30년간의 문학 활동을 하며 많은 시를 남겼음에도 자신의 시에 대한 평가는 겸손하기 짝이 없다.
“나는 대단한 시인도 아니고 아직도 횡설수설하는 수준의 글들이다. 하지만 항상 인내하고 고해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졸작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계신다면 그런 여러분들과 소통하며, 저의 시 공부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자 한다” /이미란 시민기자
오늘 – 최병태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하루뿐인 오늘을 산다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더듬고
과거와 미래의 거친 바다
한 가운데
오늘이 넘실거릴 때
살기 위한 몸부림의 손끝으로
힘겹게 움켜잡은
삭은 삶의 끈 한 가닥을
하루 해가 저물어가는
석양에 붙들어 매고서야
한 숨 돌리는 피곤한 삶
또 다시
내일이 온다 해도
그 날은 오늘일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