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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묻은 책과의 이별 – 정병수 공인회계사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은 안방을 서재(書齋)로 사용한다. 내가 안방을 서재로 고집해서가 아니라, 안방마님이 집안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려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의 결과다. 주범은 내 책이며 내 서류 뭉치다. 집안이 아닌 곳에 별도로 사무실을 구하여 서재를 갖추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럴만한 형편도 안 되고 효용성도 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이다. 만약 안방이 아닌 다른 방에 서재를 둔다면 방 하나로는 책과 서류가 넘쳐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방 하나로 서재를 퉁치자’니, 상대적으로 방이 큰 안방이 서재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아내의 의사에 따른 결정이지만, 나로선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여 살면서 지금까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안 버리는 습성’을 공유하고 있다. 아내는 옷이며 집안 생활용품, 심지어 친정집 유품까지도 장롱 구석구석에 잘 보관하는 편이며, 나는 주로 책이며 서류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편이다.
안 버리고 못 버리는 습성은 나나 아내나 오십보백보다. 버리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므로 좋지 않은 점보다는 좋은 점으로 작용하는 일이 컸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부담으로 다가온다. 보관과 관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책 수집광의 근처에 갈 입장도 아니며, 오히려 주기적으로 책장을 정리해 버릴 것은 버리는 편이다. 서재의 양쪽 벽에 붙은 책장도 이중이라 공간이 좁은 것도 아닌데 늘어나는 책과 쌓이는 서류에 걱정이 은근히 된다.
언젠가 쌓인 서류가 눈에 거슬려 작심하고 라면 박스에 버릴 것을 추려냈다. 그런데 때 묻은 책과 이별이 섭섭했던지 한 권 두 권 책장에 도로 책장에 꽂다 보니 결과적으로 한 권도 버리지 못한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한 셈이다. 사람과의 이별이든 애완견과의 이별이든 또 무생물인 책과의 이별이든 이별은 모두 슬픈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 슬프지 않는 이별이 있으랴?
어느 날 서재에 들어서니 꽂힌 책들이 나를 향하여 볼멘소리로 하소연하는 듯이 보였다. 실제로는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리라.
“우리 주인장은 이상해! 책장에 책이 가득 차 빈 틈이 없는데도 자꾸만 새 책을 사 들고 오잖아! 이건 우리 헌 책들에게 너무 한 거야. 우리도 숨을 쉴 자유가 있단 말이에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시간이 나는 대로 빽빽이 꽂힌 저 책들을 정리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꽂힌 책은 대부분이 구입한 것이지만, 증정본도 있고, 내가 쓴 것도 있다. 책과는 달리 서류는 남들에겐 무의미할 수 있어도 나에겐 나름대로 의미와 사연이 숨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슬픈 이별을 감수해야 할 입장이다.
책을 사는 아름다운 만남을 지키지 못하고 버리는 것은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전파미디어의 발달로 문자 미디어인 책이며 신문이 옛날만큼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교수가 제자 교수에게 책을 물려주면 사랑의 선물이자 제자교수에겐 영광의 증표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변하여 노 교수는 은퇴 시 보관한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귀중본은 예외리라!
다행히도 얼마 전에 우연히 친구가 운영하는 모 강소기업(强小企業)에 들를 일이 있었다. 둘러보다 보니 회사 사무실 한쪽에 도서실이 있는데,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관련 책임자에게 이 책장에 딱 맞는 책은 아닐지 몰라도 주로 경영에 관계되는 책인데 받겠느냐 하니 오히려 고맙다는 것이다. 나는 책장에서 300여권을 뽑아 딸 시집보내듯이 전달했다. 그 후 그 회사를 갈 적마다 나는 마치 엄청난 기부라도 한 듯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끼면서 남모르는 섭섭함에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잘 지내! 너희들은 사랑을 받을 거야. 그리고 나도 종종 들릴게!”
이제는 내 서재의 책장에도 듬성듬성 빈 공간이 생겼다. 오랜만에 책장의 책도 숨을 쉬는 듯 보인다.
“앞으론 책 욕심은 버려야지. 책과 이별하는 것도 싶지 않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내 버릇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가 없다. 대형 서점은 물론이고 지하철 간이서점을 보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시선을 끈다. 참 뿌듯하고, 내 나라가 자랑스럽다. 아마도 이렇게 출판이 풍성한 것은 국민들의 의식도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오늘도 서점에서 서성이면서 “책을 사면 보지 않고 책장에 꽂아 두고 말테니, 책은 보되 구입하지는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책을 들고 카운터로 향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시간을 낸다는 것이 서문만 읽고 책장에 진열품인 양 꽂는다. 다만 책을 분양하기 전과는 책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꽂힌 책이 공기를 마시고 여유가 있어서인지 새로 사 온 책을 반기는 듯하다. 마치 먼 데서 온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공자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듯이 말이다. 나도 덩달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