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합천군청을 야로면으로 이전한 이유와 연대 그리고 당시의 군수 – 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15)

하재효
논설위원

합천군청이 과거 일시적으로 야로면으로 옮긴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그 이유와 연대, 당시의 군수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각종 문헌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낳게 되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이번에 정확한 자료를 발견하여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지난호(합천신문 제1026호, 4월28일자)의 <자료1~4>를 참고하기 바라며, 그 중에서 <자료3>을 근거로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게 된 이유
읍(邑) 터 앞에 제방(堤防)이 있어서 수환(水患)의 염려(念慮)가 없더니 서기 1841년(辛丑) 대수(大水 큰 물) 이후(以後)로 계사(溪沙=냇가의 모래)가 일적(日積=날로 쌓여) 강수(江水=강물)가 점옹(漸壅=점점 북돋아 오름)하니 지익비함(地益卑陷=땅이 더욱 낮아짐)이라. 서기 1880년(庚辰) 수변(水變=물난리)에 아사경비(衙舍傾圮=관청이 무너짐)라. 자시(自是=이러한 일로부터) 이후(以後)로 여러 번 읍(邑)을 옮길 여론(輿論)이 있었으나, 사거역중(事巨役重=일이 크고 중대함)하여 못 옮겼더니 서기 1890년(庚寅)에 군수(郡守) 임치제(任穉帝)와 유림(儒林) 등이 갑자기 읍을 야로면 야로리로 옮기고 동시에 향교는 야로면 구정리(九汀里)에 옮겼다.

옮기고 환원(還元)한 연대 및 군수
서기 1890년(庚寅)에 군수 임치제(任穉帝)가 야로면(冶爐面) 야로리(冶爐里)로 옮기고, 서기 1893년(癸巳)에 군수 민치순(閔致純)이 군민의 여론에 의하여 야로로 옮긴 후 4년만에 구읍(舊邑) 남산하(南山下)로 환원하였다.

구읍(舊邑) 야로(冶爐)에 남겨 둔 발자취 및 역사적 의의(意義)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