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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쪽파 – 문경자 수필가

텃밭에 겨를 덮어 둔 쪽파는 겨울을 이겨 내고 파릇파릇한 새순을 내민다. 윤기가 나고 통통하게 자란다. 잘 자란 쪽파는 5일장에 내다 팔면 가정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집 가까운 곳에 심어 언제나 먹을 수가 있었다. 달근하고 요리하기도 쉬워 누구나 해먹을 수 있다. 새순이 나온 쪽파는 껍질을 벗겨내고 생으로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특히 양념장을 만들 때 감초 노릇을 한다. 대파보다는 쪽파가 정이 가고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대파는 키도 크지만 몸집도 뚱뚱하다. 쪽파 옆에 붙어 자라면서 잘난 척 내려 다 보는 습성이 있어 얕보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쪽파도 아니다.
동네 마트를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과일 코너를 지나 채소코너에서 열무 1단을 2,500원에 사고, 쪽파 가격이 4,500원. 엉성하게 묶어 놓은 것을 들고 이리 저리 봐도 내키지 않았다. 그 옆에 대파는 2,500원 값이 오히려 내렸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너무 비싼 편이었다. 명절때는 이보다 몸값이 더 비싸게 팔렸다. 쪽파 1단을 사는데 이렇게 머리를 굴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날은 따지지 않고 금방 샀는데 오늘따라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머리가 나빠 더하기 빼기도 잘 못하는 내가 쪽파 1단 값을 신중하게 생각하다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할까! 그냥 갈 수도 없었다. 그사이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파마머리 아줌마도 쪽파가 비싸다며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고른 것을 보고는 비싸게 사지 말고 여기에 있는 것을 사요 하면서 내 바구니에 담아주었다. 잎이 누렇기는 해도 잘 다듬으면 김치 담을 때 양념으로 쓰는 것은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아줌마가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누렇게 뜬 것은 반값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가족이 먹을 건데 좋은 것으로 담가야 맛도 있지. 여기 저기 둘러본 아줌마는 또 나에게 와서 차라리 깐 파를 사라고 일러주었다. 귀가 얇아 또 맘이 바뀌었다. 싱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눈물을 흘리며 파를 깐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이 나빠져 더 신경이 쓰였다. 결국 깐 파를 한 단 샀다. 이러다가 언제 김치를 담글까 혼자 신호등을 건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파는 깨끗하게 씻기만 하니 일거리도 줄어드는 일석이조가 된 셈이다. 쪽파를 손질할 때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아이들은 엄마 울지 마 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하는 아이를 보니 괜히 더 슬펐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쪽파를 다듬었다. 매운지 훌쩍훌쩍 울어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나서 더 울었다. 내가 시집을 가서는 매운 시집살이가 서러워 울었다. 시어머니는 도시에서 시집을 온 큰며느리가 눈에 차지 않았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뽑아온 싱싱한 열무와 쪽파는 부드럽고 손에 닿는 감촉이 살아있었다. 잘 키운 쪽파는 떼어낼 것도 없는데 뚝뚝 떼어낸 쪽파 잎을 보고 놀라서 한마디 했다. 파 다듬는 것을 보니 살림을 알뜰하게 할 수가 있겠나 했다. 쪽파 다듬는 일만 그러하겠는가! 열무 물김치를 담그는데 마늘이 귀한 때라서 쪽파의 알뿌리를 마늘 대신 부엌칼 등으로 으깨어 담았다. 시원한 물김치가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고된 시집살이 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좋았다.
열무를 정성껏 다듬으며 콧노래도 불렀다. 밀가루와 굵은 소금을 넣어 끓인 물을 식혀 두었다. 고춧가루에 멸치액젓을 넣고, 파란 청양고추와 붉은 고추를 알맞게 썰었다. 마늘도 넣고 쪽파도 열무 길이 만큼 썰었다. 모든 재료를 넣고 살짝 버무려 김치통에 담아 간을 보니 딱 맞았다. 이럴 때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여보 물김치 맛있어요. 최고예요. 칭찬을 해주던 남편의 목소리가 뚜껑 닫을 때 들리는 듯하다. 마늘을 빻아 주고, 쪽파를 다듬으며 매운 눈물을 참고 잘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아주 맛있게 담갔다며 같이 밥을 비벼 먹던 생전의 남편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가족이 오순도순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요맘때 물김치 국물이 톡 쏘는 사이다처럼 맛있다. 혼자서 보글보글 끓인 된장, 고추장, 참기름, 열무를 넣고 비볐다. 시원한 물김치 국물을 먹어보았다.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혼자 먹기에 너무 아까워 단체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너무 맛있겠다, 침 넘어 간다, 나누어 먹자 등등 댓글을 달아 주었다. 열무 물김치와 쪽파의 궁합이 잘 맞았다. 쓱쓱 비빈 밥을 먹으며 웃음이 입꼬리에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