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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2인자 (3) – “유대치” – 김현덕 법무사

  1. 들어가는 말
    유대치가 활약하던 19세기 조선은 암울한 시기였다.
    정조때부터 시작된 세도정치(한 국가의 정치권력을 한 가문이 독차지하는 기형 정치형태)는 순조때 김조순(안동김씨), 헌종때 조만영(풍양조씨), 철종때 김좌근(다시 안동김씨)으로 지속되면서 조선은 서서히 망조를 보이고 있었다.
    조선은 대내적으로는 세도정치에 의하여 새로운 정치사상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고인 물은 당연히 썩듯이 부패가 극에 달했다.(삼정문란이 대표) 대외적으로는 지리상 발견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후 서양세계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거대한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영국 등의 서양세계에 굴복된 시기였다.(1842)
    다행히 조선에도 집권노론 세계에서 한 가닥의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었다. 고균 김옥균을 필두로 한 젊은 엘리트 정치집단이 성장하고 있었으니 ‘개화당’이었다.
    1995년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이 국민의 높은 관심 속에 절찬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신봉성 극본으로 유대치(이정길 분), 김옥균(정보석 분), 박영효(이민우 분), 역관 오경석(정동환 분) 등 당대의 최고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연한 명작이었다. 여기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고균 김옥균을 잠깐 소개하고 아름다운 2인자인 대치 유홍기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2.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1851-1894)
    1)김옥균은 충청도 공주 사람으로 원래는 몰락한 안동김문의 허울만 양반인 가난한 선비의 아들이다. 그러나 당시 병조판서 김병기가 옥균의 능력을 알아보고 자신의 양자로 삼으면서 인생길이 열리게 된다. 양부의 기대에 부흥하게도 그는 약관 20세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함으로써 서서히 안동김문의 다음 후계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당시 기득권층의 사고와는 달리 당시 서양의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만이 조선의 살길이라는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옥균은 비록 당시 조선의 권력 안동김문의 후계자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여서라도 조선은 개화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개화당은 평양감사 환재 박규수(연암 박지원 손자), 중인 역관 오경석, 중인 한의사 대치 유홍기 등의 지도를 받고 있었고 그중 중심은 유홍기였다.
    2)그후 김옥균 등 개화당은 1884년 일본 외세의 힘을 이용해 한꺼번에 조선을 개화시키려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천하로 실패한다.(1884) 큰 틀에서는 민중의 지지가 없는 찻잔 속에 파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일본으로 망명해 울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중국 이홍장과 민족의 운명을 건 담판을 위해 중국 상해로 갔다가 조선 정부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44세 나이로 암살당한다. 그의 시체는 저자거리에 효수되고 가족들은 3족이 몰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당하게 된다. 개화당의 쿠데타는 비록 3일 천하로 끝났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개화의 물꼬를 틀려고 했던 그들의 애국심만은 역사는 인정해줄 것이다.
  3. 대치(大致) 유홍기(劉鴻基)
    (1830~?, 백의정승白衣政丞)
    1)구한말의 개화사상가이며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다. 신분상 중인인 그는 한의사였으며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역관 오경석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가져온 ‘영환지략’ ‘해국도지’ 등을 숙독하고 오경석 등과 토론을 하면서 당시 세계정세를 꿰뚫고 있는 거의 유일한 조선지성인이었다. 그는 당시 젊은 개화당 김옥균, 박영효 등을 조우하게 되고 그들은 훈련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2)그가 옥균을 만난 것은 1870년경으로 당시 옥균은 과거 합격 전 20세 정도이고, 대치는 불혹의 40세 정도였다.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 옥균은 양반이자 최고 엘리트였지만, 스승인 중인 대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따랐다. 세간의 대치에 대한 평에 따르면 “학식과 인격이 모두 고매 탁월하고, 또한 교양이 심원한 인물이었다”라고 평한다.
    옥균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역관 오경석, 대치와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의 개화사상, 신문물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계속해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10년 후에 벌어질 갑신정변을 준비해나간 듯하다. 실로 아름다운 스승(2인자)과 제자의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후 차츰 모임의 규모가 커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유길준, 서재필 등 급진 개화당으로 발전하게 된다.
    3)유대치가 갑신정변(1884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져있지않다. 다만 평소 신중한 성품을 봐서 아무런 대책없이 일본 공사관의 협조만을 믿고 옥균 등 개화당에게 정변을 일으키게 요청했을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정치 엘리트들의 돌출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대치는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행적을 감추었고, 끝내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야사에서 성난 민중들에 의한 돌팔매로, 돌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만 전해질 뿐이다.
  4. 맺는 말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 말이 있다. 암울한 구한말 시대, 당대 조선 최고의 젊은 엘리트들과 이들을 지도한 낮은 신분의 중인 지식인들의 사제지간의 정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